죽음에 대한 SF적 지침

김겨울 2021. 1. 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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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치료 가능한 병이다.' 이 명제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사람을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동의하는 사람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죽음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 보므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삶을 상상하는 데에 거부감이 적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죽음을 극복 가능한 대상으로 본 적이 없을 것이며 죽음이 극복된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워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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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치료 가능한 병이다.’ 이 명제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사람을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동의하는 사람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죽음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 보므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삶을 상상하는 데에 거부감이 적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죽음을 극복 가능한 대상으로 본 적이 없을 것이며 죽음이 극복된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워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이 후자에 해당할 것이며 그중 적극적인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죽음이야말로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거야.’

동생이 언니에게 말한다. 그녀는 이제 영영 떠나버릴 작정이라고. “남김없이 모조리 포착될 거야. 내 두뇌의 구석구석이, 마지막 한 귀퉁이까지. 그렇게 하면 나는 다시 살아나. 그 일을 다 해내면 앞으로는 아무도 죽지 않아도 돼. 이 연약한 육신이 우리 감옥이 아니게 되는 거야.”

누나가 동생에게 말한다. 너희 자녀들이 비트의 세계로 넘어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이제는 우리도 아이가 있어. 의식으로 이루어진 아이를 창조하는 방법을 찾았거든. 그 아이들은 디지털 세계의 원주민이야. 너도 이곳에 와서 네 조카들을 만나봐. 변치 않는 존재에 집착하는 건 바로 너야. 우리야말로 진화의 다음 단계니까.”

이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매일의 삶에 사로잡혀서, 그 매일의 삶이란 사실상 죽음으로부터의 사투라는 점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신을 파고들어가면, 충분히 파고들어만 가면 이 모든 것이 타나토스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바람에 죽음을 무시하게 된 존재니까. 죽음이 일상의 공간에서 점점 멀어져 병원으로, 요양원으로, 장례식장으로 옮겨지는 동안 우리의 망각은 점점 더 깊어지고 삶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불현듯 삶에 회의가 찾아올 때,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생각할 때 사람들은 철학을 찾는다. 삶에서 무엇도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이 낯설어져버린 사람들은 지침서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철학자들의 학문적 사투보다 SF의 유연하고 한계 없는 세계가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SF는 생각해본 적 없는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고 써본 적 없는 근육을 사용하게 만든다. 독자는 눈에 보이는 세상 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죽음이나 도덕이나 의미 같은 것들로 가득한 지극히 추상적인 세상이 겹쳐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음은 치료 가능한 병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가 영원히 살도록 태어났다면 이런 소설집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김겨울 (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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