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화오리 슬픈 일제 수탈의 역사, 학술보고서로

최진숙 2021. 1. 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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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전북 정읍시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은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6일 발간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필두로 농업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던 시기, 화오리는 초기 이주지로 선정된 곳이다.

구마모토 리헤이 농장 소속 의사였던 쌍천 이영춘 박사는 해방후에도 열악한 농촌 보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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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뉴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전북 정읍시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은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6일 발간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필두로 농업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던 시기, 화오리는 초기 이주지로 선정된 곳이다. 대규모 농장이 개설됐고 개간된 농지와 대지 소유권은 대부분 구마모토 리헤이 등 이주해온 일본인들이 가져갔다. 당당한 자영농이었던 토착민은 서서히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구마모토 리헤이 농장 소속 의사였던 쌍천 이영춘 박사는 해방후에도 열악한 농촌 보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박사는 한국 소작농들의 치료에 헌신을 다했던 인물이다. 그는 농장 시설물을 활용해 입원실과 내과 등 5과 진료과목을 갖춘 화호중앙병원을 설립했다. 지금도 이런 흔적이 남아있다.

보고서는 식민지 화호리의 인문환경, 문헌자료, 현장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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