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업앤댄스-성취 대신 연대를, 목표 대신 사랑을 [만화로 본 세상]

2021. 1. 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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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영화잡지 ‘씨네21’에는 한국 영화의 소년성과 관련한 논란이 불붙듯 일어났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공동경비구역 JSA〉 등 영화 속의 남성들은 주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자신의 남성성을 깨닫고, 동시에 아버지의 세계에 진입하려 시도한다.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이들의 모습을 “공동체가 방출되는 기압에 휘청대면서도 공동체 바깥에 자의식의 뿌리를 내렸다”고 평하며, “소년들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거나 고뇌하지 않았다”고 썼다.

「셧업앤댄스」의 한장면 / 네이버 웹툰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으며 혼자만의 고뇌 속에 빠져드는 남성들의 성장 문법은 어딘가 익숙하다. 마치 성장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라는 듯, 주변에 성장통을 가득 흩뿌리면서 소년들은 혼자 무언가를 이뤄내려 한다. 힘에 대한 갈망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소년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주먹을 휘두르고 폭력적으로 성욕을 분출하며 자신의 존재에 끊임없이 집착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최근 작품들의 경향에서는 이러한 성장 서사가 매우 희미해졌다. 작품 속의 청소년들은 성장을 거부하거나, 아예 밑바닥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모색하는 방향(〈이대로 멈출 수 없다〉)을 택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 노력을 통해 메꾸고, 남들과 다투어 성취해내는 기존 성장 서사와 다르다. 이들은 성공하기보다 실패하며, 혼자 이뤄내기보단 문제적 현실을 함께 버텨낸다. 이전까지 성장 서사가 마침내 성취하는 서사를 그려냈다면 최근의 작품군은 전환과 수용 그리고 연대를 말한다.

달라진 성장 서사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셧업앤댄스〉(이은재·네이버웹툰 연재)다. 한 고등학교의 에어로빅 동아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 속엔 오합지졸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 모두 에어로빅엔 한톨의 관심도 없다. 에어로빅 동아리인데 주짓수 도복을 입고 있는 조규찬, 아이돌 지망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최종 경선에서 떨어진 서원준, 오로지 교과서에 코를 박고 공부만 하는 정재형, 시도 때도 없이 갑작스레 달려나가는 윤상, 슬그머니 동아리의 일원이 된 황소윤, 어떤 말에든 ‘그건 너의 편견이 아닐까?’라고 대꾸하는 김현철까지. 동아리 선생님조차 에어로빅보다는 공무원 시험 합격에만 관심을 둔다.

얼핏 보면 다들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각자의 현실과 고군분투하며 당면한 삶의 문제를 헤쳐나가려 애쓰고 있다. ‘이건 너무 오지랖이 아닌가?’ 걱정하며 조심스레 꺼낸 말 한마디가 서로에게 기댈 구석을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에어로빅 동아리의 친구들이 크게 기여한 바는 없지만, 도망갈 곳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들은 든든한 구원군이 된다.

이 동아리 안에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꿈을 발굴하기보다 오히려 꿈이 없다는 사실을 더 기쁘게 찾아낸다.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공부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걸 입 밖에 냄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이들은 성취 대신 사랑을 말하며, 남을 대상화하거나 짓밟으며 올라섰던 그간의 성장에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왜 그렇게까지 홀로 우뚝 서야 하냐고 말이다. 나도 이들의 질문에 동참하고 싶다. 2021년, 나는 더 많이 사랑하겠다.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성장이니까.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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