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에는 백신도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2021. 1. 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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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코로나19 팬데믹이 해를 넘겼다.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수많은 방역 지침과 단계를 달리하며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일상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국회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된 법률 개정안만 수백개가 발의되었다. 필요하고 시의적절한 것들도 있었지만 반인권적이고 비합리적인 것들도 적지 않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모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감염병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을 강제퇴거 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유행이 장기화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의료 및 방역자원을 ‘외국인’에게까지 투입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안의 이유다. 그러나 해외에서 입국한 외국인 감염병 환자나 감염 의심자의 조사, 격리, 치료에 드는 비용을 본인에게 부담시키는 법률 개정안은 진즉에 통과돼 지난해 8월부터 시행 중이다. 그렇다면 현 개정안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 국적 이주민을 그 대상으로 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강제퇴거는 심각한 범죄나 반사회적인 행위로 사회에 큰 해를 끼친 이주민에 한해 집행된다. 이미 이 땅에서 경제적·사회적 기반을 쌓고 가족을 꾸리며 살아온 이주민에게 강제퇴거는 삶의 터전을 박탈하는 엄중한 처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염병 관련 법률이나 방역 지침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감염병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퇴거라니.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무슨 중범죄라도 된단 말인가. 감염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지만 감염 자체를 처벌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반인권적인 발상이다.

격리와 치료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감염된 이주민에게는 지원이 제공된다. 감염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유도함으로써 감염병으로부터 더 많은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감염병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강제퇴거를 당하게 된다면 검사와 진단을 꺼리는 이주민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에는 감염병 병원체 보유자에 대한 강제퇴거 집행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도 없다. 강제퇴거 과정에서 소요될 비용이 의료 및 방역에 들어갈 비용에 비해 과연 적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감염병으로 인한 사회 전체의 위험은 가중시키면서 비용면에서도 합리적이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가 과학적으로 무지하고 치료를 위한 의술이나 전파를 막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던 시대에는 감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추방하고 박해를 가했다. 이번 개정안은 그러한 전근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외국인’ 감염병 병원체 보유자만을 콕 찍어 추방하겠다니, 외국인 혐오를 부채질해 ‘국민’의 환심을 사겠다는 정치적 속내까지도 엿보인다. 코로나19 예방 백신이 개발돼 올해 상반기 안에는 국내에도 도입될 거라고 한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법안 발의를 예방하는 백신도 개발되면 좋겠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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