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미루기 바쁜 안전망..지옥에 남겨진 '제2의 정인이'

김남이 기자 2021. 1. 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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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 구멍 뚫린 아동보호]
'정인이처럼…' 경찰이 떠나면 학대 아동은 집에 남는다
경찰·전문기관 출동했지만 분리 조치 못 받은 정인이

#'1kg가량 빠진 것은 의문이나, 아동학대로 보기 어려움'. 3차 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이 정인이 양부와 소아과에 가서 받은 의사 소견이다. 경찰과 아보전 등은 의사 소견과 양부의 말을 믿고 정인이를 분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정인이는 20여일 뒤인 지난해 10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5월 7일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준호(가명)를 학대우려 아동 A등급으로 지정했다. 13일에는 아보전이 주거지를 방문해 계모와 친부, 준호를 조사했다. 이후 경찰은 계모와 친부에게 체벌 사실까지 시인 받았다. 하지만 준호는 그 집에 계속 남았다. 6월 1일 아홉 살 준호는 여행용 가방에서 숨졌다.

사회 안전망이 정인이와 준호를 지키지 못했다. 정인이와 준호, 모두 아동보호 시스템에 문제가 감지됐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 몇 겹으로 만든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스템 안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동한 경찰이나 아보전 담당자가 현장을 파악할 전문성이나 평가도구가 부실하다"며 "전문가 의견이 현장에 반영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권한과 촘촘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 10건 중 8건 집에서 발생하지만, 분리조치 '12%'...정인이도 집에 남았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사례로 접수된 사건은 3만45건으로 전년보다 22.2%나 늘었다. 2015년과 비교 하면 4년 사이 2.6배나 아동학대 사례가 급증했다.

아동학대의 75.6%는 부모(계부모, 양부모 포함)로 인해 발생한다. 발생 장소는 ‘가정 내’가 79.5%에 달한다. 집에서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사례가 2019년 한 해에만 2만3000여건에 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학대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되는 사례는 12.2%에 불과하다. 대부분 아동(83.9%)은 원래 가정에서 계속 생활하며 3.3%는 임시 분리 조치 됐다가 가정으로 복귀한다. 국내 아동보호 시스템이 분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인이' 사건도 양부모와 정인이를 분리할 기회가 3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즉각적인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1, 2차 조사에서 아보전은 즉각 조치가 필요없는 낮은 위험도 평가를 줬다.

3차 신고에서는 분리 조치를 검토했으나 양부모가 격한 반응을 보이자 방향을 틀었다. 경찰과 아보전은 현장 회의를 통해 아보전이 다른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고, 향후 관리하기로 했다. 아보전은 정인이의 양부와 소아과에 갔고, 해당 소아과는 ‘아동학대로 보기 어렵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정인이가 사망하고, 부실 수사가 문제가 되자 서울경찰청 점검단을 꾸려 사건을 다시 살펴봤다. 점검단은 피해아동 분리에 소극적으로 판단했고, 아보전과 협업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재학대율 11.4%, 가정에서 또 매 맞는 아이들..."원가정 건강한지 살펴봐야"

정인이와 준호 사건은 아동학대 시스템이 작동했음에도 결국 아이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즉각 분리 조치되지 않고, 원가정에서 그대로 지내다가 재학대로 사망했다.

아동을 재학대 사례는 2019년 기준 3431건으로 재학대율은 11.4%에 이른다. 재학대하는 10명 중 9명은 부모다. 제대로 된 확인없이 가정으로 돌려보내 매 맞는 아이를 또 만드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맹목적인 ‘원가정 보호원칙’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행법에서 원가정 보호원칙은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적극적인 아동 분리를 위해 원가정 보호 원칙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행법상 경찰이 현장에서 아동을 분리할 수 있는 규정은 응급조치(72시간)뿐으로 학대 현장이 아니고, 급박하지 않으면 사실상 분리를 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정부는 '1년 2번에 신고 시 아동을 즉각 분리'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었고, 오는 3월 시행할 예정이다. 보통 법안은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이지만 ‘즉각 분리’ 부분은 시급성을 감안해 3개월 뒤 시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가정이니까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지 원칙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며 "무조건 분리보다는 원가정이 건강한지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하고, 부모들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남이 기자

1점이 모자라서…'학대 없음' 판정받은 정인이
아동보호전문기관 현장 위험도 평가서 낮은 점수 받아

1점이 모자랐다. 정인이는 처음 아동학대 신고가 된 지난해 5월부터 분리조치 등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장 위험도 평가에서 1점이 부족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에 실시한 위험도 평가를 뜯어보니 16개월된 정인이에게 적합하지 않았고, 발육상태도 문제 없다고 평가했다.

정인이는 아동보호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빠졌다. 경찰과 아보전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서로에게 판단을 전가했고, 아보전이 정인이를 데리고 찾아간 의사마저 "아동학대로 보기 어렵다"는 소견을 냈다. 해당 병원은 정인이 양부모가 자주 찾던 곳으로 전해진다.

◇9점 만점에 2점…정인이는 1점이 모자라 '학대 없음' 판정을 받았다

5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아동 학대 조사가 3차례나 실시됐지만 현장 조사 기관인 경찰과 아보전은 서로에게 판단을 미뤘다. 특히 아보전은 현장에서 정인이에게 즉각 조치가 필요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제공한 아보전의 학대 평가 자료를 보면 정인이는 1~3차의 조사에서 각각 아동학대 위험도 3점, 2점, 3점을 받았다. 즉각적인 아동보호 조치는 4점(총점 9점)부터다. 3차 조사의 경우엔 '즉각 조치가 필요'에 체크했지만 분리보다는 방문 면담 등 사후 관리로 결론내렸다.

문제는 아보전의 평가 항목이 영아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1~3차 조사에서 '아동이 학대자에 두려움 표현,' '아동이 학대자로부터 분리보호 요구 의사표현'이 없다고 평가했다. 16개월된 정인이는 제대로 된 의사표현이 불가능하다.

아동보호 관계자는 "아기가 부모에게 안겨만 있어도 거부감이나 분리요구 표시가 없는 것으로 체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3차 조사의 경우 '아동의 영양상태가 불량하다'는 어린이집의 신고를 받고 시작됐지만, 정작 3차례 모두 발육부진이나 영양실조 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육안으로도 정인이의 발육부진이 확인되던 시점이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장은 "아동 상태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평가 점수가 나와서 어이가 없다"면서 "애초에 분리하지 않을 생각으로 척도를 대충 작성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아보전이 정인이를 양부와 함께 데려간 소아과 의사마저 이상한 소견을 내놨다. 그는 "1㎏ 가량 몸무게가 빠진 것은 의문이나 이 상황만으로 아동학대로 보기에는 어렵다"며 "우선 처방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서로 책임 미루기…'니가 해라'

5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이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스1

경찰 자체 조사 결과, 경찰과 아보전이 분리조치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경찰청에서 받은 '정인이 사건' 재조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과 아보전은 서로 정인이의 분리조치에 대한 판단을 전가했다.

서울청 점검단은 "경찰은 아보전이 피해아동 보호 측면에서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로 아보전에 의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아보전은 분리조치 할 경우 임시조치 신청 등 수사가 진행되기에 경찰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양 기관이 양부가 조사에 협조적인 점, 아동과 양부간 애착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점을 이유로 분리조치에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3차 조사에서는 정인이 양부모 측에서 분리조치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이자 이를 철회하고 아보전에서 특별 관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전문가 "학대 평가 내릴 근무 환경 조성…필요시 엄벌도"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상담사들이 제대로 학대를 감시하기 힘든 환경이기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상담원이 부모를 무서워해 판단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면서 "자칫하면 부모에게 소송이 들어오는데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소송을 국가에서 막아주는 등 보호 장치가 있어야 상담원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대를 방치한 아보전의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6월 천안에서 발생한 여행용 가방에서 아동이 숨진 사건도 아보전의 위험도 평가가 3점이었다.

공 회장은 "아동이 분리 보호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에는 해당 상담원을 아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면서 "정인이 사건에서 경찰은 주의 경고라도 받았지만 아보전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한결 기자·김남이 기자·이창섭 기자

'3번 SOS'에도 못 구한 정인이…아동학대 방지 시스템이 문제
아동보호 현장 직원, 전문성 키우기 어려운 환경 고쳐야


숨을 거두기 전까지 세 차례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갔지만 적절한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한 정인이 사건을 두고 아동학대 방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경찰과 상담사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순환 보직과 잦은 이직으로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는 한계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예산 확보와 전문 인력 육성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 검찰, 아동전문기관까지…위험 감지 못한 시스템

5일 경찰과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13일 정인이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와 사망하기 전까지 총 3번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과 경찰에 접수됐다.

첫 번째 신고전화는 지난해 5월25일 걸려왔다. 어린이집 원장이 '피해아동 몸에 멍자국이 있다"라며 신고했지만 경찰은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사 종결했다. 한 달 후에는 익명의 신고자가 아보전에 신고했다. 경찰은 두 차례에 걸쳐 양부모를 조사했지만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지 6일 만에 불기소 처분했다.

마지막 신고는 정인이가 사망하기 3주 전이었다. 어린이집 원장이 영양상태가 불량한 정인이와 소아과를 방문했고 진찰 의사가 경찰에 신고했다. 이번에도 경찰은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소아과 의사는 '1㎏ 가량 몸무게가 빠진 것은 의문이나 이 상황만으로 아동학대를 판단하긴 어렵다'라고 소견을 냈다.

◇아동전문 상담사, 이직률 높고 연속성 떨어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6일 서울 영등포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열린 아동보호전문기관 현장 간담회에 앞서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스1


전문가들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의 절대 인력이 부족하고 이직률이 높아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 내 보직도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일의 연속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김세원 가톨릭관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현장에 나가는 경찰과 상담사의 경험과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상담사는 업무가 힘들고 급여가 높지 않아 이직률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이어 "아동학대 조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순환 보직으로 일하기 때문에 전문성과 노하우가 쌓이기 힘들다"라며 "전문 인력 배치와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아보전에게도 아동학대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고 급여 수준도 높여 전문인력이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사례 3만45건으로 직전년도(2만4606건) 대비 2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018년 62개소에서 2019년 67개소로 5개소 늘어나는데 그쳤다. 기관 1곳이 평균적으로 3~4개 시군구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 확보가 급선무정인이 위탁모 "잠깐 이슈로 끝나지 않고 시스템 개선됐으면"

/사진=이지혜 디자인 기자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예산을 투자해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아동학대 혐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사건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성을 갖춘 경찰과 검사, 판사가 육성될 수 있게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피해아동을 분리해 보호하는 일시 보호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분리보호 시설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고 영아나 장애아 같은 경우 시설자체가 부족하다"라며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시설부터 개선이 돼야한다"고 했다.

생후 8일째 되는 날부터 약 7개월 동안 정인이를 기른 위탁모 신모씨와 딸 연경씨는 "학대 신고가 접수되기 전까지 아동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학대를 겪을 것"이라며 "말을 못하는 정인이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두려움에 피해 내용을 말 못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첫 신고가 들어왔을 때 깊이 있는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전국민이 함께 분노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잠깐의 이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정말 아기들을 위한 방향으로 법이 개선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주현 기자

"내 딸로 와주면 안 되겠니"…정인이 묘 찾아간 수많은 이모·삼촌
추운 날씨에도 이어진 추모 물결
[양평=뉴시스]김선웅 기자 =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故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2021.01.05. mangusta@newsis.com


겨울 바람을 피할 곳 하나 없는 벌판에 정인이가 누웠다.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도 추모객들은 각자 선물을 들고 와 아이의 묘지를 감쌌다. 전날밤에 눈까지 내려 5분만 걸어도 신발은 젖고 마스크엔 물방울이 맺힐 정도였지만 오전에도 많은 사람이 정인이를 찾아왔다.

5일 오전 9시 30분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방문했다. 묘지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경사가 가파른 눈쌓인 도로를 10여분 가량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정인이만 허락해주면 이모의 둘째딸로 와주면 안 되겠니"…추운날 이어진 추모 물결

5일 오전 9시 30분쯤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위치한 故정인양의 묘./사진=이강준 기자


별다른 안내판이 없었지만 멀리서도 선물이 가득 쌓여있는 묘지가 있어 쉽게 정인이를 찾을 수 있었다. 선물은 16개월 아이가 필요할만한 것들이 곱게 정리돼있었다. 유아용 과자부터 시작해 음료, 인형, 장난감 심지어 작은 목도리와 베이비 로션, 파우더까지 있었다.

모두 정인이가 건강하게 살아있었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선물이었다. 정인이 삼촌·이모를 자처한 추모객들의 편지도 가득했다. 한 편지에는 "아가야 미안해. 밤에 너무 무섭지 않게 빛나는 등을 두고 갈게"라며 "정인이만 허락해주면 이모의 둘째로 와줄 수 있겠니"라고 적혀 있었다.

5일 오전 9시 30분쯤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위치한 故정인양의 묘비./사진=이강준 기자

또 다른 편지에는 "하늘에서는 너가 겪었던 반대의 삶을 살기를 늦게나마 빌겠다"라며 "추운날,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으면 한다. 언니가 입던 옷 말고, 새 옷 입고 이쁘게 지내"라는 글과 함께 스웨터가 담겨 있었다.

같은 양평군 주민들뿐 아니라 서울, 심지어 충청도에서도 추모객이 찾아왔다. 아이와 함께온 양평 주민 오모씨(37)는 "우리 넷째 막둥이가 정인이와 동갑"이라며 "지옥같은 삶을 살았던 정인이 이야기가 남같지 않고 가슴이 너무 아파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어 추모하러 왔다"고 말했다.

차를 빌려타 정인이를 추모하기 위해 온 연인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문모씨(18)는 "양평을 잠깐 가야할 일이 있었는데 정인이가 있다는 걸 알고나서는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묘지를 방문했다"고 답했다. 그는 장난감과 인형을 정인이 묘지 곁에 두고 다시 길을 떠났다.

5일 오전 10시쯤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서 만난 문모씨(18)가 故정인양에게 줄 장난감과 인형을 들고 있다./사진=이강준 기자


충북 제천시에서 온 이모씨(40)는 "양평에 외근을 나왔는데 잠시 짬을 내서 정인이를 보러왔다"고 했다. 이씨는 덤덤하게 묘를 바라본 후 길을 내려가던 중 갓길에 정차하더니 차 안에서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꽤 긴 시간을 남몰래 울기도 했다.

정인이로 알려지게된 양평 하이패밀리는 소아암·백혈병으로 사망한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로 수목장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다. 이곳 사이트는 트래픽 초과로 한동안 마비돼 이날 오전 급하게 서버를 확충하기도 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송길원 목사는 "정인이를 찾는 추모객들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방문객이 많지만 모두 정인이와 묘지를 존중하고 있다. 묘지 방문객들이 쓰레기 한 톨도 남기고 가지 않아 관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인이 일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라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제2의 정인이가 나와서는 안 된다. 아동복지에 끝없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양평(경기)=이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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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정한결 기자 hanj@mt.co.kr,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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