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 처벌 없인 포스트 코로나도 없다

한겨레 2021. 1.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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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 연속기고 : 11개의 질문][새해 연속기고] 2021, 11개의 질문 ④ 노동의 위기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가 걷히지 않은 채 새해를 맞는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과 인식과 삶과 관계를 모두 바꿨다. 그동안 인류가 구축해온 유·무형의 자산과 가치와 체계와 질서를 코로나19는 하루아침에 허물어뜨렸다.

코로나19가 사라지더라도,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2021년 초두, <한겨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코로나19 이후의 전망을 담은 석학과 전문가들의 특별기고 ‘2021, 11개의 질문’을 마련했다.

5년 전 조선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에 대해 연구하고자 지도학생들과 울산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조선업 분야 대기업들의 부도 위기로 울산에서 실업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었다. 나는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소득보장 제도가 대규모 실업자들에게 제대로 다다르고 있는지 연구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상 연구를 시작해보니, 대기업의 부도나 실업 한파는커녕 피라미드식으로 이루어진 수백개의 하청기업들에서 노동자들이 여전히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의 충격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릴 적 언젠가 개미 몇 마리를 따라가다 들어올린 커다란 돌덩이 밑에 깨알같이 움직이고 있던 수백 마리 개미들처럼, 우리 사회에는 대기업들의 부도 위기라는 커다란 돌덩이 밑에 드러나지 않은 불안정 노동자가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인터뷰 중 한 노동자의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가 아는 형님이… 한 30m 높이에서 추락해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근데 사람들이 그냥 피 닦고, 바로 일을 하더라고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이 숨은 개미들의 나라에서는 일하다가 죽는 것이 그렇게 ‘흔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지난해 코로나19 전염병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거대한 성취가 한순간에 신기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적 성취와 놀라운 기술혁명의 연약함, 이른바 잘나가던 선진국가들부터 속절없이 추락하는 현실을 보고 정신이 다 혼미해지는 한해를 보냈다. 그런데 새해가 밝아 정신을 차리고 코로나19 이후의 노동을 그려보자니, 난데없이 5년 전에 처음 접한 숨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떠오른 것이다. 빠른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을 이루어내고 케이(K) 방역까지 성공한 것 같지만, 사실 일하다가 속절없이 죽는 사람이, 일하다가 아프게 되는 사람이 너무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며칠 전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진 사망자 수가 900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2019년에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이미 2천명을 넘어 한국은 줄곧 산재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확진자 수를 긴장하며 지켜보고, 증가하는 확진자의 사망에 공포를 느끼고 분노한다. 하지만 추락하거나, 끼여 죽거나, 절단되거나, 직업병을 얻어 아프거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해에 2천명이 넘는다는 사실에는 너무 무감하다.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죽고, 그보다 많은 수가 일하다가 아프게 되고, 또 그들 가족의 가슴에 남은 아픔의 크기까지 상상해본다면, 일터의 위험은 나와 내 가까운 이웃도 경험할 수 있는 ‘흔한’ 재난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한번도 겪지 못했던 코로나19 이후의 노동과 사회정책에 대해 전망해보는 것이 내가 부탁받은 숙제이지만, 나는 날마다 우리가 오랫동안 겪어온 일터에서의 죽음부터 말해야겠다. ‘안전한 일터’라는 이 단순하고도 오래된 숙제를 내팽개치고는 그 어떤 미래 전망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산재를 야기할 위험을 안고 있다. 사용자는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의 임금, 노동시간, 작업환경 등의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투자를 가능한 한 억제하려는 경향이 있고, 시장 소득에 의존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로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업주는 재해노동자에게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산재보험도 이미 1960년대에 도입됐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의 죽음은 줄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몇개의 대기업이 빠른 시간 내 고도성장을 이루어내는 사이 기이하게 뻗어나간 다단계식 하청노동 시장의 확대가 내뿜은 해악이 자리 잡고 있다.

하도급의 확대는 현재 한국에서 주요 제조업뿐만 아니라 건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가전수리·통신·보안·청소 등의 서비스업 그리고 공공부문에까지 놀랄 만큼 확대되어 있다. 하청의 만연화는 위험의 외주화를 가능하게 한다.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려면 우선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일하다 발생한 사고여야 하고, 동시에 고용주가 명확해야 책임자도 드러날 수 있다. 그런데 다단계 방식의 하청 구조는 사용자와 고용주를 분리하여 책임자가 누구인지 모호하게 한다. 노동자들의 사건·사고에 대해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꼬리만 자르니, 책임자가 누군지 수수께끼가 되어버린다.

큰 기업들이 최저가를 제시하는 하청업체와 새로운 도급계약을 맺는 사이, 다수의 작은 하청업체들은 무한경쟁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가장 쉽게 희생시킨다. 노동자는 제한된 시간 내 일을 더 처리해야 하거나 당장의 소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조차 산업안전교육이 비용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또 하청사업주들은 산재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원청과의 재계약 실패 또는 소송 등의 여러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산재 절차 자체를 기피하며 사고 원인을 최대한 노동자의 개인 과실로 전가한다.

이런 구조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례적인 노동시장 타격이 발생하며 더욱 강화되었다. 지난해 비정규직의 실직 위험이 정규직의 7배 이상이었지만,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이들 상당수는 정작 실업보험에 포괄되지 못했다. 학교와 요양시설들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이 증가한 대신 이들의 소득은 줄거나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좋은 일자리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재택근무가 선택지가 되었지만, 한쪽에서 택배노동자는 장시간 근로로 쓰러지는 일들이 잦았다. 우리에게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하지만 이런 숙제들 가운데 최우선순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는 법안을 두고 논의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도 허용할 수 없다. 다단계식 하청노동 시장의 확대는 사람의 생명에도 적용돼 산재사망 사건의 86% 이상이 50인 미만인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일하다가 죽는 노동자의 90%는 하청노동자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건비나 작업환경에 대한 투자 축소 압박이 앞으로도 지속될 상황에서 하청기업 고용주는 같은 물량을 더 적은 비용으로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일감의 기회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 지금,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환경의 일을 거부할 수 있는 협상력이 더 낮아질 것이다. 마치 어쩔 수 없는 구조인 듯 적극적인 조처가 미뤄지는 사이 우리 발밑에 숨어 있는 목숨들은 내일도 그렇게 자꾸만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을 처벌하기보다 노동자의 안전교육이 먼저다, 원·하청 기업 간 관계 개선이 먼저다, 산재법이나 산안법 개정이 먼저다, 한계기업은 안전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먼저다 등 선행해서 할 일이 많다는 주장이 있다. 모든 제도는 서로 얽혀 있어 하나만 해결해서는 안 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일 때가 많다. 문제는 그렇게 선행해서 할 일들을 따지는 사이에 그 어느 하나도 ‘먼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노동자가 쓰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씩 자꾸만 유예하다가 노동자의 목숨으로 만들어진 쇳물을 쓰는 나라에서 우리가 살게 되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부터 이번에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없이는 포스트 코로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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