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뇌성마비 장애인, 늘 치수 큰 옷을 입는 이유를 아십니까
뇌의 손상이나 발육 이상으로 장애를 가진 뇌병변(뇌성마비) 장애인은 신체 변형 및 운동 기능 저하로 기성복 이용이 어렵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뇌병변 장애인의 약 72%는 장애로 인해 스스로 옷을 입고 벗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일부 의류업체에서 장애인을 위한 옷을 만들지만 옷의 종류와 수량이 매우 한정적이다. 뇌병변 장애인이 입고 싶은 옷을 고르거나 시간∙장소∙상황(TPO)에 맞는 옷을 선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장애인도 각자 취향에 맞게 옷을 골라 입을 수 있을까. 많은 고민과 논의가 오갔다. 그러던 중 서울시와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가 ‘뇌성마비 아동의 의복 문제 해결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원동력이 되어 우리 복지회에서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의복 리폼 사업’을 시범 실시했고, 2018년 한 해 동안 108벌을 만들었다. 사업을 시작했다는 의의는 있지만 재원에 한계가 있고 장애인 의복 문제를 개선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더 많은 장애인에게 혜택을 제공하려면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다. 기성복을 확보하면 더 많은 리폼 의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의류 회사 이곳저곳의 문을 두들겨봤지만 협약이 성사되기 어려웠다. 뇌병변 장애인 누구나 혜택을 보려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입을 수 있는 브랜드여야 했기 때문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우리의 취지를 이해하는 한 업체를 만났다. 일상복으로 유명한 유니클로였는데, 내의에서 외투까지 다양한 옷이 있고 성별이나 연령과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딱 맞았다. 업체 역시 옷으로 소외 계층이 더 나은 일상을 살도록 돕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 사업은 참가자 개개인의 신체 특성과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보조공학사와 10년 이상 의류 수선 경력을 지닌 재단사가 함께 한 명 한 명 상담 과정을 거쳐 맞춤형으로 수선 방향을 정한다. 기업이 힘을 보태며 시범 사업 때보다 더 많은 장애인이 혜택을 받았다. 2019년에 서울에서만 400명이 넘는 장애인이 참여했고 올해는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까지 지역을 확대해 800여 명이 맞춤형 리폼 의류를 받게 됐다.
이 사업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리폼하여 몸에 잘 맞는 옷을 입고 편안함을 느낀 것은 물론 다양한 형태의 옷을 선택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옷을 입고 벗는 게 불편한 장애인은 편의를 위해 본인 사이즈보다 큰 옷을 입거나 신축성 좋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팔 관절이 굳어 입기 힘들었던 패딩을 리폼을 통해 쉽게 입고 난생처음 청바지도 입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리폼된 셔츠를 잘 차려입고 가족 결혼식에 참가할 수 있어 기뻤다는 사연도 있었다. 리폼 의류로 의생활이 나아진 건 물론이고 입고 싶은 옷을 입어 자신감까지 생겼다는 참가자 피드백을 통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 옷을 선택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뇌병변 장애인에게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사업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대다수 장애인이 옷을 고를 때 개인의 취향이나 상황을 반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장애인들이 신체적 장애로 인해 옷을 ‘골라’ 입을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리폼 사업과 같은 의미 있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나아가 기업은 물론 정부도 장애인의 의복 선택 권리에 대한 논의와 지원을 추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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