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지금 우리는 제2의 1·4 후퇴 중이다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2021. 1.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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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그때처럼
오늘의 전쟁에서도
끝내 생존하겠다는
절박한 生의 의지를
결코 포기하지 말자

# 70년 전인 1951년 이즈음 우리는 ‘1·4 후퇴’의 와중에 있었다. 혹독하게 추웠던 그해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에 밀려 1월 4일에 다시 서울을 내주고 너 나 할 것 없이 피란에 나섰다. 하지만 전쟁은 그로부터 2년 6개월여의 지루한 공방전 끝에 53년 7월 27일에야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으로 일단락됐다. 2021년 새해 벽두의 작금 상황도 총성과 포성만 없을 뿐이지 70년 전 당시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중공군처럼 밀려온 코로나로 우리의 방역 전쟁은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도 끝날 것 같지 않다. 빨라야 올 하반기에나 본격화할 백신 접종 이후 어느 정도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내년 혹은 후년쯤 가서야 코로나와 종전 아닌 정전(停戰) 정도를 예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낙관적 전망일 수 있다. 제때 공급되지 못하는 백신도 문제지만 코로나 변이(變異)가 이미 나타나 다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새해 들어 처음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에 “국민의 일상을 되찾고 선도 국가로 도약하겠다”고 적었다. 올해 첫 대국민 메시지인 셈인데 과연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해 이제는 엿가락처럼 흐느적거리는 방역 단계를 낮춰주면 국민의 일상이 저절로 되돌아올까? 불편한 진실은 정작 코로나가 걷힌다 해도 우리의 일상이 곧장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이른바 ‘소주성(소득 주도 성장)’으로 우리의 경제 체력은 거덜이 난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때마침 침입한 코로나는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거대한 실패’를 ‘분식(粉飾)’하고 가려줬다. 심지어 지난 총선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발동시켜 180석을 안겨주며 정권을 수렁에서 건져준 일등 공신도 다름 아닌 코로나였다. 그 후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방역을 사실상 통치 수단화했다. 하지만 재소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천 명이 훌쩍 넘는 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의 어처구니없는 사례만으로도 한때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하겠다며 자랑하던 K방역의 허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 아닌가.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가 구멍난 K방역의 실상이 아니라면 그곳에서 ‘집단면역 실험’이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결국 선제적 방역 시점마저 놓쳐버린 후 뒷북치는 문재인 정부의 K방역 덕분에(?) 안에 갇힌 재소자들과 역으로 밖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애꿎은 자영업자들만 죽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엊그제 피트니스센터 관장의 죽음은 그 대단한(?) K방역이 빚어낸 단말마적인 곡소리의 시작일 뿐이다.

# 지금 공무원이나 직장인을 제외한 자영업자들의 삶의 그루터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대개가 이른바 긴급대출지원금이란 명목의 이러저러한 빚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빚으로 빚을 돌려 막으며 연명할 건지, 아예 하던 업을 접어야 할 것인지가 새해를 맞은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한결같은 고민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온 국민을 혼돈과 혼란의 늪으로 몰고 갔던 각종 부동산 정책과 세제가 올해부터 더 본격화한다는 사실 역시 국민의 일상을 밑뿌리부터 흔들며 불안케 한다. 다음 달 설을 전후해, 그리고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전·월세 시장은 더 크게 요동칠 것이 뻔하다. 그러니 전 국민 대상의 여론조사에서조차 코로나보다도 부동산 정책이 더 문제라고 국민들이 답하지 않던가. 이러니 설사 코로나가 물러간다 해도 우리에겐 돌아갈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생사를 가를 호랑이 입 같은 험지가 폐허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 상황이 이러함에도 어제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저력’ 운운하며 “선도 국가로 도약하는 2021년을 만들겠다”고 재차 말했다. 그제 문 대통령이 원주~제천 간 노선을 달릴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 ‘KTX-이음’ 개통식에서 “(전기로 작동하는)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가 첫 운행을 시작한다. (그린 뉴딜) 선도 국가로 가는 대한민국호의 힘찬 출발이다”라고 말한 것과도 맥이 통한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이 강조한 ‘그린 뉴딜 선도 국가’로 가려면 더 많은 양질의 전기가 필요하다. 원전 없이 태양광이나 풍력, 화력 등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탄소 배출을 현격히 줄이려면 화력발전을 중지하고 원전 폐쇄 결정부터 뒤집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저탄소 사회구조로 바꾸는 문명사적 도전’에 나서겠다고 거창하게 말하기에 앞서 에너지 기본 체계부터 바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눈과 귀에는 1년 남짓 남은 임기에 그동안 이리저리 파헤쳐 놓은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는커녕, 30년 후인 ’2050 탄소 중립'이니 느닷없는 ‘선도 국가로의 도약’이니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만 들린다.

# 문재인 집권 후부터 가속화한 경제 체력의 저하 상태에서 코로나의 습격을 받아 초토화되고 부동산 등 생활 밀접형 정책의 거대한 실패까지 덮쳐 어지러운 삶의 바닥에서 단절되고 고립된 삶이 일 년 넘게 지속되면서 생계형 파경(위장 이혼), 아동 학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 어두운 그림자도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때 정녕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이라면 ‘탄소 중립’이니 ‘선도 국가’니 하는 딴 세상 얘기를 신년 화두로 던질 일이 아니다. 3년 넘게 끌었던 전쟁 속에서 생(生)의 의지를 결코 놓지 않았던 70년 전의 우리처럼 2021년의 또 다른 전쟁에서도 끝끝내 각자의 삶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절박한 생의 의지를 결단코 놓지 말자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읍소라도 해야 옳지 않겠나! atomb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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