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어용 언론'을 요구하는 문파들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21. 1.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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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저는 이 지면을 통해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이하 문파)과 소통을 해보렵니다. 허황된 꿈이라고 미리 내치진 말아 주십시오. 전 문파가 많은 호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문파와의 소통에 비교적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람되지만, 문파가 어떤 분들인지 잘 안다는 뜻입니다. 제가 일상적 삶에서 겪은 바로는 대부분 착하고 정의롭고 개혁적인 분들이더군요. 하지만 저와 정치적 대화는 안 통합니다. 문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검찰개혁을 비롯해 주요 현안들에 대한 원론적인 생각은 같지만,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문파와 저는 각자 딴 나라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갈라집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늘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곤 합니다. 문파는 개혁과 문 정권을 동일시하는 반면, 저는 그럴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문파는 현실적으로 문 정권이 잘돼야 개혁도 가능하니 문 정권에 문제가 좀 있더라도 비판보다는 지지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저는 문 정권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런 지지는 오히려 독약이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잘못된 길’의 여부와 그 정도를 판단하는 것인데, 바로 여기서 저와 문파의 생각이 크게 다른 것이지요.

그런 생각의 다름 때문에 늘 문파로부터 비판받고 있습니다. 저는 한겨레에도 기고를 하고 있는데, 제 글에 달린 댓글들은 비판 일색입니다. ‘한겨레 절독’ 운운하는 댓글을 볼 땐 한겨레에 미안할 정도이지요. 그럼에도 댓글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듣기에 불편할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하더라도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드러내는 게 소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매일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주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꼼꼼히 읽습니다. ‘정치적 소비자운동’에 관한 책을 쓰다가 언론불매운동을 다루면서 갖게 된 관심이자 버릇입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두 신문의 인터넷 기사엔 자신이 애독자임을 주장하면서 ‘절독’을 위협하는 댓글들이 자주 달립니다. 몹쓸 기사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간 자세히 살펴본 수백 건의 기사 중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절독’을 위협하거나 ‘기레기’라고 욕하는 게 무슨 유행병처럼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두 신문은 무조건 문 정권의 편을 드는 ‘어용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지요.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
개혁과 현 정권 동일시 경향
다른 의견 언론에 ‘절독’ 위협
정권의 무오류 전제한 압박만
여당 지지율 20%대 떨어진 지금
정권에 행사하는 영향력 멈춰야

그런 요구는 언론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사고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걸까요? 전 절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전 익명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완전히 드러낸 상황에선 그런 요구를 할 리 없습니다. 두고두고 자식들에게까지 웃음거리나 흉이 될 말을 왜 하겠습니까? ‘어용 언론’은 문 대통령이 ‘무오류의 존재’라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인데, 우리가 정녕 “우리 이니는 항상 옳다”고 외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과거 두 신문에 실린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문제 삼는 분들도 많습니다.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하에 ‘어용 언론’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저는 노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죄책감을 누군가에게 덮어씌우는 ‘희생양 찾기’라고 생각합니다. 펄쩍 뛰지 마시고, 제 이야길 좀 들어보시지요.

2000년대 중반으로 돌아가 봅시다. 임기 3년 반이 지난 시점인 2006년 8월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14%대로까지 추락했습니다. 노 정권은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고, 그 결과는 2007년 12월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의 압승(이명박 48.7%, 정동영 26.1%, 이회창 15.1%)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어용 언론’을 요구하는 분들은 그런 결과에 대해 언론과 지식인의 책임을 묻습니다만, 이는 민중을 졸(卒)로 보는 오만한 생각입니다. 언론과 지식인이 무어 그리 대단한 힘을 가졌다고 감히 민중의 생각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2004년 3월 광기 어린 ‘노무현 탄핵’을 뒤집은 ‘촛불의 힘’, 그리고 2004년 4월 제17대 총선에서 나타난 열린우리당의 압승은 어떻게 설명하려고 그러십니까?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여권의 절대적 압승을 설명할 때엔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분들이 왜 안 좋은 일만 생기면 언론과 지식인 탓을 하나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요?

노 정권 시기에 나온 진보언론의 비판도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읽어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앞서 언급한 비극적인 결과에 이르지 않게끔 성찰하라는 요구였습니다. 성찰을 하지 않아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면, 성찰을 하지 않은 쪽이 비판을 받아야지 왜 성찰을 요구한 쪽이 비판을 받아야 하나요? 세상에 이런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어떤 담론을 그게 나오게 된 역사적 상황의 맥락을 통째로 제거한 채로 전혀 다른 상황에 소환해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요?

문파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건 문 정권이 계속 잘나간다면 문제될 게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그렇질 않다는 걸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지난해 12월26일 박용하 기자가 쓴 “지지층만 바라보고 ‘검찰개혁’ 구호만 외쳐온 여권의 패착”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에 달린 다음 ‘베스트 댓글’을 감상해 봅시다.

“문재인 대통령님. 어떻게 주변 관리를 이렇게 하셨습니까. 정권 초기 모든 것에서 완벽했던 정부가 조국 이후로 어떻게 이렇게 망가집니까. 내 편 챙기다가 정권 다 말아먹고, 내 편 아니면 다 적폐로 돌리고, 국민들 갈라치고, 추미애 같은 사람 내세워서 뭘 어쩌겠다고 기용해서 이 사달을 만듭니까. 내년 7월이면 나갈 총장 그렇게 몰아붙여야 했습니까? 자기 정치하는 추미애에게 속도조절을 요구하거나 말 안 들으면 경고하셨어야죠. 이 중요한 시기에 법무부 장관이 모든 이슈 독점하게 놔두고 그나마 정권 운영동력이었던 방역도 구멍나고, 부동산 말아먹고, 외교도 특별한 성과가 없고, 정치는 실종되고 이게 뭡니까 대체.”

이 댓글과 비슷한 말을 하는 분들이 제 주변의 문파들 사이에서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문제가 단지 ‘주변 관리’ 수준의 것인지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원인 진단이 정확해야 해법 모색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권력의지가 전혀 없이 ‘운명’에 의해 대통령직에 차출된 그분은 ‘의전 정치’를 제외하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인 대통령입니다. 이는 문 정권에 ‘컨트롤 타워의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사실상 문파가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간 여권 정치인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수천통의 메시지로 자신들을 압박하는 문파의 눈에 들기 위해 강성 발언 경쟁을 벌여왔고, 그렇게 형성된 여권 분위기가 일련의 정치적 판단과 정책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심지어 일부 여당 의원들이 앞다퉈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면서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거나 “지지층의 분노야말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역풍”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문파에 대한 아부 경쟁이 아닐까요?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민주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져도 오직 문파만을 바라보고 가야 한다니, 이렇게까지 무책임하게 굴어도 괜찮은 걸까요?

문파 개개인은 훌륭한 분들일망정, 책임을 질 수 없는 익명의 감성집단이 지배하는 국정운영은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파가 문 정권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문파는 각자 선 자리에서 체감하는 작은 민생 문제들을 개혁 의제로 제안하고 관철시키는 노력을 하는 방식으로 문 정권을 도와야 합니다. 낮은 자세로 ‘밑에서 위로’ 가야 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훈장질’을 한다는 비난은 달게 받겠습니다만,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론 안 된다는 주장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조금은 열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랄 뿐입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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