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이탈리아식 저녁은 8시부터

로마 근무를 시작하고 첫 회의 기획서를 썼다. 한국에서처럼 6시에 회의를 마치고 6시 반에 ‘저녁 식사 시작’이라고 표시해놨는데, 보자마자 상사가 웃더니 8시로 수정했다. 저녁을 주로 오후 8시에 먹는 이탈리아에서는 7시 반 전에는 문 연 식당이 없으니까. 바로 다음 사업처인 북유럽 노르웨이에선 저녁 식사가 오후 5시로 당겨졌다. 해가 일찍 지기 때문이었다. 바레인에서는 이슬람교 참가자들의 일과 중 기도 시간을 보장하느라 현장 답사를 늦춰야 했고, 아프리카 잠비아에서는 원활하지 않은 도로 사정 때문에 행사 참석자들 도착 시간이 최소 2시간은 조정될 수 있도록 공연을 앞에 배치하는 요령을 현지 동료가 알려줬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장려하는 것은 나만 열린 생각을 갖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세한 부분의 실천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많이 소통하며 맞닥뜨려야만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일러스트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며 민감하게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배우는 것은 사업 내용에서 다양성을 갖췄는지에 대한 검증이다. 강의 내용과 사례도 출처가 고르게 나와야 해서 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특히 유럽, 미국 등 서구권 전문가만 논의를 주도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들만의 방식을 편안히 공유할 수 있도록 열린 멍석을 까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고려는 서류에 남는 사업 내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식사 한 번을 해도 다양한 종교와 문화권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고기나 야채를 고르고, 술을 금기시하는 이들을 위한 테이블 세팅과 음료수 구비도 신경 써야 했다. 교육 과정을 운영하며 참가자들끼리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활동도 기획하는데, 간단한 게임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각자가 편안하다고 여기는 신체적 접촉도나 활동의 범위가 완연하게 달라 남녀 간 악수도 조심하는 문화권이 있는 반면, 처음 보는 사람과 볼을 부비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지로 좁은 공간에서 신체를 맞닿게 하거나, 예기치 않게 불편할 상황을 만드는 것을 늘 조심한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장려하는 것은 나만 열린 생각을 갖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세한 부분의 실천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많이 소통하며 맞닥뜨려야만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