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총리 “英갑부들, 세금 적은 아테네로 오시오”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1.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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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계기로 기업 등에 러브콜… 투자 유치 나선 미초타키스 총리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영국에서 유럽 본토로 옮기는 기업은 프랑크푸르트나 파리로 간다는 통념이 있죠. 하지만 이제 다릅니다. 영국 은행 두 곳이 아테네에 지점을 개설하는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3) 그리스 총리의 경제수석 알렉스 파텔리스가 최근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초타키스 총리가 과감한 ‘세금 할인’을 제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영국의 부자와 기업들을 아테네로 끌어들이는 계획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7월 총선 압승으로 4년에 걸친 좌파 포퓰리즘 정권을 밀어낸 미초타키스는 친(親)시장주의 개혁을 앞세워 나라를 되살리려 애쓰고 있다. 젊은 시절 런던 금융가에서 일했던 그는 특히 해외 투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2010년부터 8년간 구제금융으로 연명한 그리스를 단기간에 회생시키려면 외국 자본 유입이 시급하고, 이를 위해 과감한 감세(減稅)가 필요하다는 전략이다.

그는 취임 직후 법인세율을 28%에서 24%로 낮췄다. 배당 소득세도 10%에서 5%로 뚝 잘랐다. 외국 억만장자가 그리스를 거주지로 택할 경우 다른 나라에서 얻은 소득은 얼마가 됐든 10만유로(약 1억3330만원)의 단일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도 만들었다. 영국이 이와 비슷한 제도를 1800년 무렵부터 시행해 각국의 부자를 끌어모았는데, 그대로 본뜬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학사, 경영학 석사(MBA)를 딴 그는 런던에서 금융 컨설턴트, 투자은행 애널리스트 등을 거치며 금융가 엘리트로서 경력을 쌓았다. 그 경험을 국정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규제를 줄이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시장 원리에 충실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그리스중앙은행에 따르면, 그의 취임 첫해인 2019년 그리스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41억3700만유로(약 5조2000억원)로 전년보다 23% 급증했다. 2015년 23.5%이던 실업률은 2019년 17.3%까지 줄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지난해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아시아 자본 유치에도 열성적이다. 그가 취임한 지 넉 달 만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테네를 찾아와 둘이서 그리스의 관문인 피레우스항을 둘러보는 장면이 화제를 모았다. 피레우스항은 이미 중국 자본이 운영권을 갖고 있는데, 미초타키스는 더 많은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그는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는 1990년부터 3년간 그리스 총리를 지냈다. 공무원을 늘리고 현금 복지를 남발하는 그리스식 포퓰리즘의 원조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이끄는 사회주의 세력과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이다.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포퓰리즘과 싸우는 셈이다. 미초타키스의 누나는 아테네 시장을 지냈고, 누나의 아들인 그의 조카가 현재 아테네 시장이다.

2019년 7월 총선에서 미초타키스가 이끄는 중도 우파 신민당은 전체 300석 중 158석을 차지했고, 좌파 집권당이었던 시리자는 144석에서 86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시리자를 이끌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는 긴축 재정을 중단하겠다며 그리스인들의 환심을 샀지만,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 채권단의 힘에 밀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자 어차피 긴축 재정을 피하지 못할 바에는 친시장주의자인 미초타키스가 나라를 살리는 데 적임자라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그리스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랜 포퓰리즘으로 나랏빚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가 2019년 기준 180%에 달해 EU(유럽연합)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방어하느라 모든 서방 국가의 나랏빚이 급증했고, 그에 따라 그리스의 결점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포퓰리즘 정권 시절 현금 살포에 익숙한 일부 그리스인이 개혁에 반발하고 있는 점은 미초타키스가 넘어야 할 산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에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일까지 그리스 확진자는 14만526명인데, 인구가 엇비슷하면서도 훨씬 잘사는 벨기에(65만11명), 스웨덴(43만7379명)보다 두드러지게 적다. 한발 빠른 봉쇄 조치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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