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여성 1호'는 '2호'의 죽음조차 몰랐다
치매 남편 간병 위해 퇴직 불구
치매 앓아 긴즈버그 타계 몰라
초고령 사회의 '과제' 해법 절실
지난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이 타계한 뒤 대법원에선 총 10건의 애도 성명이 나왔다. 먼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동료 대법관 8명이 저마다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살아 있는 전직 대법관도 현직과 똑같이 예우한다. 그래서 앤서니 케네디(2018년 은퇴)와 데이비드 수터(2009년 은퇴) 두 전직 대법관 역시 각각 성명을 내놓았다. 이는 대법원 보도자료에 현직 대법관 것과 동등한 비중으로 실렸다.
1981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오코너는 1993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발탁한 긴즈버그와 곧잘 비교된다. 둘은 미국의 ‘1호’, 그리고 ‘2호’ 여성 대법관이란 이유로 나란히 주목을 받으며 1993년부터 13년간 동료로서 우정을 나눴다.
긴즈버그가 뚜렷한 진보 성향이라면 오코너는 보수에서 출발해 차츰 중도로 옮겨갔다. 스타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긴즈버그가 정작 대법원에선 ‘소수파’에 그친 반면 오코너는 오랫동안 대법원의 ‘지배자’였다. 진보와 보수가 4대4로 팽팽히 맞선 핵심 사건마다 결정적 한 표, 이른바 ‘스윙보트’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미국 법조전문기자 제프리 투빈은 대법원 뒷얘기를 다룬 책 ‘더 나인’(2010)에서 오코너를 가리켜 “미합중국 역사상 나라 전체에 그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여성은 전혀 없었고, 그러한 영향을 미친 남성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때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커다란 권한을 행사했던 여성이 말년에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무엇을 성취했는지조차 잊었다는 건 정녕 슬픈 일이다. 절친한 후배이자 옛 동료의 죽음 앞에 추모사 한마디 못 바치고 지나쳐야 했던 점은 ‘운명의 가혹함’이란 어구마저 떠올리게 한다.
더 안타까운 건 오코너가 76세로 아직 건강하던 2006년 종신직인 대법관을 내던진 게 치매에 걸린 남편 간병을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변호사인 남편은 아내가 대법관이 되자 모든 활동을 접고 외조에만 전념했다. 오코너는 “젊은 시절 남편은 나를 위해 다 포기했다”며 대법관에서 물러나야 하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2009년 남편을 영영 떠나보낸 오코너는 이후 ‘치매 치유 전도사’를 자처하고 미 전역을 돌며 왕성한 강연과 봉사활동을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도 그 치매를 피하지 못했으니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싶다.
“윤정희는 항상 90세까지 영화 촬영을 하겠다고, 하고 싶다고 습관적으로 말했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기억력이 없어지면서도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가슴에 안고 살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재불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지난해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에서 치매를 앓는 아내 대신 공로상을 받으며 밝힌 소감 일부다. 올해 77세인 윤정희가 영화 ‘시’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이 불과 11년 전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치매 문제에 관심이 많다. 과거 어느 자리에서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사연을 소개하며 “대통령 된 사위도, 저도 못 알아보신다”고 토로했다. 그런 김 여사가 지난해 ‘세계 치매 극복의 날’ 메시지를 통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라며 “그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 나는 좋았던 일,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을 고이 간직한 채 축복받은 삶이었노라 할 수 있을까.’ 인류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김태훈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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