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한국에 묶인 7조 때문? 바이든 향한 전략적 도발?

길윤형 2021. 1. 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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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이란 '한국 선박' 나포 진짜 속내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4일(현지시각)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1만7426t급)를 나 포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소형 고속정이 한국케미에 가까이 접근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파르스(FARS) 뉴스 동영상 갈무리

해양오염에 대한 ‘기술적 조처’일까, 억류 자산을 반환받으려는 ‘비열한 압박’일까. 그도 아니라면, 미국과 이란 사이 ‘전략적 갈등’에 엮인 것일까. 이란이 4일 오후 한국의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1만7426t급)를 나포하는 ‘이례적’인 행동에 나서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마침 이날은 이란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무릅쓰고 우라늄 농축도를 20%까지 올리는 작업을 시작한 날이다. 이란의 진짜 ‘속내’가 무엇이냐에 따라 사태 해결의 해법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이란 외교 당국은 나란히 이번 나포가 해양 오염과 관련된 ‘기술적 조처’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란 외교부 고위 당국자 등은 ‘이번 건은 단순히 기술적인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교부는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우리 선박 및 선원들의 조기 억류해제를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도 전날 누리집에 공개한 성명에서 “이번 이슈는 완전히 기술적인 것이다. 선박이 바다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후 외교부에 초치된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는 선원들이 안전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정부는 해군 청해부대 최영함(4400t급)을 호르무즈해협에 급파한 데 이어,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을 실무반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어, 최종건 제1차관을 10일 현지에 보내 사태 조기 해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부 설명대로 ‘기술적’ 문제가 원인이라면, 사태가 원만히 풀릴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한 배경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이 압류하고 있는 이란 원유 수출대금에 대한 이란의 불만이 이번 사태의 직간접적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부터 한국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의 계좌를 통해 원화로 무역 결제를 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2019년 9월 이란을 특별지정국제테러조직(SDGT)으로 선정하며 양국 간 교역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에 따라 약 70억달러(약 7조7600억원)가 한국에 묶여 있는 상태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이란은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고 호소하는 등 자금 반환을 강력히 요청해 왔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이 한국 내 동결 자금으로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 백신을 확보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해 미 재무부에서 특별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송금 과정에서 돈을 달러로 바꾸면 미국 은행으로 돈이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돈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이란 정부가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고 밝혔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5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선원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인질극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 돈 70억달러를 근거 없이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좀 더 심각한 시선으로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의 압박’ 정책으로 인해 미국과 이란은 살얼음판 같은 대립을 이어가는 중이다. 나포 전날인 3일은 미국이 드론 공격을 통해 ‘이란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한 지 1주년 되는 날이었고, 지난해 11월27일엔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이스라엘 모사드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숨졌다.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 여론이 들끓자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암살에 대한 보복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그 직후인 12월20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국 대사관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로켓탄 공격이 이뤄졌다. 미국은 이후 핵을 탑재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 B-52를 세번이나 페르시아만에 띄웠고, 핵잠수함 조지아, 항모 니미츠를 파견해 이란을 견제했다. 이런 ‘살벌한 대립’이 이뤄지는 와중에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30%가 오가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는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란이 선박 나포 당일 20% 농축도(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이상)의 우라늄 생산을 재개했다는 사실이다.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5월 ‘이란 핵협정’을 일방 파기한 뒤에도 이 틀을 유지해왔지만, 이제 선을 넘었다. “취임 후 핵협정에 복귀하겠다”고 말해 온 조 바이든 당선자를 상대로 ‘전략적 도발’에 나선 상황이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여러 시나리오와 사정을 감안해 (이란의 의도를) 파악 중이다. 예단을 내리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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