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물방울처럼..無로 되돌아간 추상 거장 김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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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물방울을 그린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는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 추상화 거장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이 생전 작가노트에 쓴 글이다.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물방울은 그에게 허망한 것의 상징이었다.
그는 실제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영롱한 물방울로 세계적인 명성, 상업적 성공, 국내 대중적인 인기까지 모든 걸 이루고 떠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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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물방울을 그린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는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 추상화 거장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이 생전 작가노트에 쓴 글이다.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물방울은 그에게 허망한 것의 상징이었다. 그는 50년 넘는 세월 천착해온 자신의 물방울처럼 5일 그렇게 무로 돌아갔다. 향년 92세.
그는 실제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영롱한 물방울로 세계적인 명성, 상업적 성공, 국내 대중적인 인기까지 모든 걸 이루고 떠난 작가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열여섯 나이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한후 6·25 전쟁으로 학업을 그만뒀다.
1957년 박서보, 하인두, 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1960년대 해외로 눈을 돌려 파리,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뉴욕에 머물며 판화를 전공했다. 백남준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이때 파리에 정착하면서 현 부인 마르틴 질롱씨를 만나 평생을 함께 했다.
물방울 회화가 처음 나온 것도 파리에서였다.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처음 선보인후 그는 줄곧 물방울만 그렸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됐다.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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