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홍콩 영화의 몰락

이용욱 논설위원 2021. 1. 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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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뱅가드 스틸이미지 /네이버영화 제공

1980~1990년대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홍콩 영화가 흥했던 시절이 있었다. 다소 허황된 액션과 따뜻한 유머가 섞인 몇몇 작품들은 할리우드 대작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름의 아우라를 풍겼다. 특히 청룽(成龍·성룡)의 존재를 빼놓고 그 시절 홍콩 영화를 말할 수 없다. 대역을 쓰지 않는 고난도 액션은 지금 봐도 현란하다. 액션과 간간이 뒤섞인 슬랩스틱 코미디는 관객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그의 대표작 <폴리스 스토리> <용형호제> 시리즈 등은 중장년층에게 고전으로 통한다.

청룽의 최신작 <뱅가드>가 국내 개봉했다. 범죄조직에 얽힌 VIP와 그의 딸을 지켜내기 위해 국제 사설경호업체 뱅가드의 리더로 출연한다. 영국 런던을 비롯, 아프리카,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 등 세계 곳곳을 무대 삼아 총격전과 카체이스, 수상 추격전 등 화려한 볼거리를 펼친다. CG와 특수효과도 빈번히 쓰인다. 할리우드 영화를 넘는 ‘영화굴기’라도 하겠다는 야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뒷맛은 쓰다. 영화 내내 강요 수준으로 이어지는 ‘중국 만세’ 메시지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춘제는 이제 전 세계적인 행사가 됐다”는 말과 함께, 런던 차이나타운에서 열리는 춘제 행사가 클로즈업된다. 영화 속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올곧다. 납치된 주인공은 “평생 먹고살 돈을 주겠다”며 회유하는 악당들에게 “우리는 너희들과 다르다”며 중국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설교한다. VIP의 딸은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 보호활동을 벌인다.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캡틴 차이나’까지 등장한다. 뱅가드가 미국 항공모함을 테러에서 구하는 결말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대배우는 왜 커리어를 망치는 이런 영화를 찍었는가. 홍콩 영화의 재기는 어디로 증발했는가. 영화를 체제미화용 선전수단으로 여기는 중국 정부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코로나19 책임론,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 등으로 지탄받고 있는 중국 정부로선 영화를 통한 이미지 개선을 노릴 법하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개입하면 예술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혹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이용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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