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식당=여성은 가사·육아' 인식 초래 불편 명칭 바꿔야"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2021. 1. 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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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여고생들이 남녀간 역할 인식에 다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편의점 상품 명칭을 바꿔 달라며 청원을 제기해 다양한 의견이 전해졌다.

학생들은 ‘엄마식당’이라는 상품명이 ‘여성은 가사와 육아’라는 인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상품명 변경을 요구했지만 과도한 해석이란 의견 등 비공감이 더 많았다.

아쉽게도 학생들이 목표로 한 1만 동의를 얻을 수 없었지만 “남녀가 평등한 사회 만들기에 한발 다가섰다”는 긍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 청원 사이트에 오른 청원. ‘식사를 준비하는 건 엄마 뿐?’ 이라고 적혀있다. 청원사이트 캡처
◆“‘엄마식당=여성은 가사·육아’ 인식 초래 불편하다”

‘오보’(매체명) 등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10대 여고생들의 작은 반란은 지난달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시작했다.

학생들은 일본의 한 편의점 기업이 선보인 ‘엄마식당’이란 상품명과 중년 여성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에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광고는 ‘어머니가 손수 만든 음식처럼 안심할 수 있는 음식(상품)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학생들은 이같은 내용과 상품명이 ‘여성=가사’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봤다.

일부에서 시작된 이같은 문제 인식은 일본 효고현, 교토시, 오카야마현 등 3개 지역 여자고등학교로 확산했고 뜻을 함께한 학생들은 ‘성별에 따른 역할을 단정 지을 수 없는 사회 만들기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 여고생들의 사회 인식 바꾸기 도전에는 공감이 모여 ‘걸 스카웃 일본 연맹’을 비롯해 매체 보도를 접한 성인 여성들도 함께했다.

일본에서 이같은 활동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은 한국처럼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성가족부 같은 정부 기관이 없다. 이에 한국에서처럼 여성들이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명칭 바꿔야”

이렇게 뜻을 함께한 이들은 해외 청원 사이트에 청원을 게재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해당 사이트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는 사회로’라는 주제로 성 역할 인식에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상품명을 바꾸자는 취지의 청원이 게재됐다.

청원은 일본에서 벌어지는 남녀간 불평등 사례를 지적했다. 내용을 보면 “일본의 경우 남성은 일, 여성은 가사라는 생각이 많지만 현실은 성별에 관계없이 남녀가 함께 일하고, 워킹맘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이어 “(청원은) 이같은 성별에 따른 인식과 가치관을 바꾸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며 “엄마식당이란 상품명은 ‘엄마=요리·가사’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 남성들의 가사 동참 인식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커 중간에 일을 포기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며 “성별로 역할을 결정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 마감된 이 청원은 7576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쳤다. 청원사이트 캡처
◆“남녀가 평등한 사회 만들기에 한발 다가서”

반면 아쉽게도 학생들이 목표로 한 1만 동의를 얻을 수 없었다. 지난달 31일 마감된 이 청원은 7576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쳤다.

또 청원자들은 해당 기업에 “한 사람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품명 변경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5일 세계일보가 해당 편의점이 기획한 상품을 확인한 결과 변화는 없었다.

목표 달성은 이루지 못했지만 청원을 게재한 이들은 지난 4일 “정말 많은 찬성 의견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청원의 목표 달성과 편의점 기업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남녀가 평등한 사회 만들기에 한발 다가섰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그간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반론도

한편 포털 기사에 게재된 약 1만 2000여개의 다양한 의견 중 욕설 등을 제외한 여러 의견 중에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 만들기’에는 공감을 나타냈지만 ‘엄마식당’이란 상품명이 남녀평등을 가로막진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특히 이같은 의견에는 여성도 동감했는데, 정작 차별적 인식을 우려한 그들 역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자랐다”는 따끔한 지적이 있었다. 이밖에 유사한 상품명이 이미 시중에 많은 점 등이 꼽혔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별 양성평등 수준을 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53개국 중 108위, 일본은 121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분야’(경제활동 참여·기회, 교육적 성취, 건강·수명, 정치적 권한)에서 성별 격차가 해소되기까지는 무려 100년에 가까운 99.5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목표 달성도 바랐던 상품명 변경도 이루지 못했지만 “남녀가 평등한 사회 만들기에 한발 다가섰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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