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사 거목 '물방울 화가' 김창열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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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물방울을 담아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함께 얻은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작가다.
한국적 리얼리즘 미술의 창시자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고, 1948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6·25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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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물방울을 담아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함께 얻은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작가다. 그는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6세 때 월남했다. 한국적 리얼리즘 미술의 창시자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고, 1948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6·25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고인은 1957년 박서보, 하인두, 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기존 가치관과 미적인 관념에 대한 변혁을 주장하는 앵포르멜(작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1960년대에는 세계무대로 눈을 돌렸다. 고인은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뉴욕에 머물며 판화를 전공(뉴욕아트스튜던트리그)했다. 이후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프랑스로 건너가 정착했다.
이때까지 만해도 고인의 작품세계는 '제사(1964)'에서 볼 수 있듯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거친 재질과 어두운 색으로 표현해 무겁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 그의 상징 물방울이 화폭에 등장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화백은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 '살롱 드 메'에서 처음 물방울 회화를 선보였다. 물방울과 문자를 접목한 작품이 나온 건 1975년이다. 화면 여백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 위에 물방울을 그리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물방울을 그려온 고인은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슈발리에를 받았고, 2017년에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오피시에를 받았다. 프랑스 정부가 예술문화 분야에 공헌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은 예술가에겐 최고의 영예로 여겨진다.
고인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톤현대미술관 등 해외 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가 제주도에 기증한 대표작 220점을 기반으로 2016년 제주시 한림읍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해 운영 중이다. 고인은 한국전쟁 때인 1952년부터 1년 6개월 간 제주에서 피난생활을 하며 제주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7일 오전 11시 50분.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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