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쉼' 경계 무너지며 번아웃 호소..대책은?
<앵커>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또 의욕적이던 사람이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다 타버리다, 소진한다는 의미로 번아웃이라고도 하는데, 코로나19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렇게 정신적 탈진 현상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실태와 함께 대책까지 안서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코로나19 치료 현장의 번아웃.
의료 인력은 부족하고, 환자는 계속 늘면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김진선 간호사/지난해 3월 대구 의료 봉사 : 간호사 6명이서 160명 이상의 환자를 봐야 했거든요. 근데 간호사는 3교대로 돌아가다 보니까…….]
[차현주 간호사/중증환자 이송 업무 담당 : 4종 보호구 입고, 또 구급차 소독하고, 또 장비 소독하고, 그러고 있다가 코로나 출동 오면 또 가는 거고, 연속적으로 피로나 이런 것들이 쌓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심리적 탈진 현상인 번아웃이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직장과 가정,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이 때문에 긴장 상태가 24시간 내내 계속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10개월째 재택근무 중인 이현희 씨가 그렇습니다.
[이현희/회사원 : 일단은 '출근을 한다, 퇴근을 한다' 이런 느낌은 전혀 들지가 않고요. 공간이 주는 묘한 힘이라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퇴근 개념이 모호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일과 후에 업무 메시지를 받기도 하는 등 일과 휴식이 모두 불완전해졌습니다.
[이현희/회사원 : 밥 먹으면 바로 다시 여기 와서 앉아 있고. 쉬어야지 해도, 여전히 공간은 그대로이다 보니까 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거죠.]
다른 나라 상황도 마찬가집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6개월간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장인 3분의 1이 업무와 일상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정신적으로 지쳤다고 답했습니다.
가정이 일터인 주부들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자녀의 학교, 남편의 직장이 모두 가정으로 들어오면서, 주부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아침 10시, 남편과 두 자녀가 각각 일과 공부를 하는 동안 엄마는 긴장을 풀지 못합니다.
엄마를 부르는 손짓에, 부엌일을 중단하고 갑자기 불려 가 종이에 풀칠을 합니다.
[가율아, 왜?]
설거지 중에도 첫째의 학교 준비물을 찾아줘야 합니다.
[서율아! 아빠한테 가면 안 돼]
식사 업무도 배로 늘었습니다.
남편 시간에 맞춰 한번,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에 맞춰 또 한 번,
[얼른 밥 먹고 또 수업 준비해야지]
10분 뒤엔 둘째 유치원 시간에 맞춰 세 번째 밥상을 차립니다.
[서나희/주부 : 아! 진짜 우리 애들은 평소랑 똑같구나, 카메라가 있어도…서율아!]
숨 쉴 틈 없는 일상이 길어지면서 언제 한계가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주부/초3·초6 학부모 : 했니? 안 했니? 이거 했니? 저거 했니? 이러다가 밤이 오는 거예요, 밥 먹이고. 그러니까 '번아웃'이 안 올 수가 없는 상황인 거예요.]
[주부/초4·초6 학부모 : 나아질 거라는 기한이 없고, 무료해지고 나태해지고. 너무 내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주부/초2·중2 학부모 : 내가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점점 고갈돼 간다는 게 가장 슬프고. 어느 순간에 '나는 뭐지? 나는 누구한테서 채우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지용/정신과전문의 : 모든 대인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데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상황은 이러한 대인 관계의 거리를 아예 없애거나 혹은 너무 가깝게 만들어 버리는 양극단으로 바꿔버리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전문가들은 번아웃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화를 통해 가족 간 역할을 명확히 나누고, 휴식 시간과 업무 시간을 번갈아서 확보해주는 배려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영상취재 : 박승원·이병주, 영상편집 : 소지혜, VJ : 정영삼·김초아·정한욱, CG : 홍성용·최재영·이예정·성재은·정시원)
안서현 기자as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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