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호황 기회 맞은 'K반도체', 팀플레이 여부가 승패 가를 것"

안경애 2021. 1. 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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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한국 대표산업 반도체 섹터의 열기가 뜨겁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일 신년 첫 행보로 경기 평택 반도체 2공장을 찾아 "협력회사, 학계, 연구기관이 협력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통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신화를 만들자"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이날 행사에는 원익IPS, 솔브레인, 피에스케이 등 중견·중소기업 대표들이 함께 했다. 삼성전자는 EUV(극자외선) 기술 등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다.

삼성의 투자계획에 발맞춰 국내 대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EUV 기술에 승부를 걸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이 상대적으로 뒤져있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려면 반도체 제조기업과 소부장 기업, 정부, 연구기관 등의 집중 팀플레이가 필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EUV 분야 국내 대표 전문가인 안진호 한양대 EUV산학협력센터장(재료공학과 교수)은 "EUV는 'K반도체'의 도약대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산발적 분산투자로는 해외 기업들과의 기술격차를 좁힐 수 없다. 국가 전체 자원을 모으고 전문가 집단이 협력하는 '범국가 EUV 컨소시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을 대체하는 차세대 반도체 노광 기술로, 10나노 이하 반도체에 필요한 미세 회로패턴을 그리는 데 필수적이다.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미세화 경쟁에 앞서기 위해 193㎚(나노미터) 파장의 불화아르곤을 대체하는 13.5㎚ 파장의 EUV 기술에 승부를 걸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필수 기술이면서, 메모리 반도체도 DDR5 기술로 넘어가면서 EUV 적용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올해를 EUV의 본격적인 원년으로 꼽는다. 고성능 시스템반도체는 대부분 EUV로 가고, D램도 DDR5는 EUV가 주를 이룰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고성능 컴퓨터와 스마트폰용 반도체 수요에 대응해 5나노, 4나노 반도체 생산을 늘리면서 EUV 적용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 작년 3월 1세대 10나노급 DDR4에 EUV 공정을 시범 적용한 데 이어 올 하반기 선보일 DDR5 D램과 모바일용 LPDDR5부터 EUV를 본격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경기 이천 캠퍼스에 EUV 장비를 도입해 올 하반기 이후 양산하는 4세대 10나노급 DDR5부터 적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EUV는 레이저, 진공, 플라즈마 등 극한 기술과 최소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고정밀 기술의 결합체다. 기술 난이도가 높지만 다층 반사경, 다층 마스크, 펠리클, 광원, 포토레지스트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해 국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에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고 대당 가격이 2000억원을 호가한다. 전체 생태계를 ASML이 주도하지만 마스크, 펠리클, 레지스트, 검사·측정장비 등 연관 소부장 영역에서 국내 기업들이 사업기회를 노려볼 만하다.

한양대는 논문이 아니라 산업계에 제대로 도움을 주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철학 하에, 지난해 대학이 직접 연구비를 투자하는 4개 플래그십 연구센터 중 하나로 EUV산학협력센터를 지정했다. 대학이 연 1억원의 연구비를 주고, 교수가 외부 연구과제를 수행할 경우 학교에 내는 간접비도 절반을 돌려준다. 이후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로 소부장 기술 국산화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센터를 국가지정연구협의체로 지정했다. EUV 관련 대학, 기업, 연구소들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센터에는 안진호 교수를 비롯, 물리·화학·재료·기계 등 7명의 한양대 교수와 포항가속기연구소, 전자기술원(KETI), 인하대, 해외 대학·연구기관 등이 참여한다. 참여기업은 국내외를 포함해 19곳에 달한다. 에프에스티·알파그래핀·이솔·SK실트론·에스앤에스텍·영창케미칼·솔브레인·피에스케이·넥스틴·대한광통신·동우화인켐·페디셈·선익시스템·큐알티·강원테크노파크 등 국내 기업 16곳과, ASML·램리서치·비코코리아 등 해외 기업 3곳이다. 센터는 참여기업, 기관들과 비대면 세미나, 워크숍, 전시행사 등을 가지며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교류 기회를 가졌다.

안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펠리클, 레지스트, 마스크 등 소재분야 R&D 투자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면서 "이전과 달리 원소재부터 완제품 기술까지 전방위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반도체 기술 국산화를 이뤄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존 불화아르곤 노광공정에서 미세 패턴을 그리려면 노광·증착·식각을 반복하는 멀티 패터닝이 필요했지만 EUV 공정에서는 한번으로 되기 때문에 소재 수요가 커진다. 이 때문에 반도체 장비기업들이 EUV 소재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EUV 마스크가 장당 8억~10억원, 마스크 보호덮개인 펠리클이 개당 3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소재 단가도 높다. 포토레지스트와 반사경 시장도 크다. 다만 반사경은 EUV 노광장비의 핵심 부품으로, ASML이 유럽 특정 기업과 협력하고 있어 진출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꼽힌다.

1998년부터 EUV 연구를 해 온 안 교수는 연구교수 2명, 대학원생 22명과 함께 마스크와 펠리클, 검사·측정장비 R&D에 집중한다.

안 교수는 "마스크를 개발해도 성능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검사장비도 직접 개발했다"면서 "수년 전부터 펠리클이 이슈가 돼 기업의 요구로 펠리클 연구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개념 EUV 포토레지스트 R&D에도 착수할 계획으로, 현재 개념 테스트 중이다. 상용화 진척이 가장 빠른 것은 펠리클로, 에스앤에스텍과 에프에스티가 각각 다른 조성의 펠리클을 안 교수와 협력해 개발하고 있다. 에스앤에스텍은 단결정 실리콘 기반 펠리클과 차세대 펠리클, 에프에스티는 실리콘카바이드 펠리클과 또 다른 차세대 펠리클을 개발 중이다. 에프에스티는 ASML 노광장비와 연동되는 펠리클 마운팅장비도 개발 중인데, ASML과 관련 협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이 가장 취약해 일본에 의존하는 분야가 마스크인데, 에스앤에스텍이 EUV용 마스크를 개발 중이다. 몰리브덴과 실리콘을 80층 높이로 쌓는 고난도 기술로, 개발에는 수천억원의 자금과 수년의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에프에스티의 자회사인 이솔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소부장 강소기업으로, EUV 검사·측정장비 개발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놨다. HHG(고차조화파) 원리의 광원을 이용한 EUV 장비로, 레고 타입의 모듈 구성을 통해 검사·측정부터 평가장비까지 구현한 게 특징이다. 이솔은 광원뿐 아니라 EUV 포토레지스트 평가용 간섭광항 노광장치 핵심 모듈, EUV 마스크용 측정장비 모듈, EUV 마스크 결함 검사장비 모듈을 개발 중이다. EUV 반도체 검사계측장비는 엄청난 고가에다 시장도 크다. 이솔이 상용화에 성공하면 미국 KLA-텐코의 독점구도를 깰 수 있다. 안 교수는 이솔의 핵심 연구인력과 14년간 공동연구를 해 왔다.

안 교수는 “이솔이 검사·측정장비를 국내 반도체 기업에 공급하려 하자 해외 기업들이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면서 "국내 기업이 EUV용 소재와 부품을 개발해도 성능을 확인하려면 검사·측정장비가 필요한데 외산 제품은 너무 고가인 만큼 국가 차원의 반도체 인프라 지원기관에서 국산 장비를 도입해서 소부장 국산화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EUV 상용화 시기가 맞물리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한정된 메모리 중심에서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등 훨씬 확장성 큰 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만큼 이를 기회로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강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신념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너나 없이 뛰어들어 각자 개발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할 수 있고, 경쟁력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안 교수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도 검사장비, 마스크, 레지스트 등 관련 기업과 기관이 다 모여 컨소시엄 형태로 R&D를 시작했다"면서 "국내 기업들이 해보지 않은 도전에서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흩어져서 각자 할 게 아니라 전문가가 모여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협업전략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기술보안을 이유로 A부처가 하는 일을 B부처에 안 알리는 식으로 벽을 만들게 아니라, 적어도 정부부처끼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가 투자를 결정하기 전 기업의 의견을 물어 투자효율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힘을 합칠 때"라고 강조하는 안 교수는 "국산 마스크나 펠리클의 기술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해 해외에서 수백억 짜리 검사장비를 들여올 게 아니라 아직 판매실적이 없는 국내 장비를 써서 소재·부품·장비 기술력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K반도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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