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줘도 소비 대신 저축만..포스트 코로나 규제완화에 방점"

김정남 2021. 1. 5. 19: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미경제학회 2021]
재무장관, 하버드대 총장 지낸 래리 서머스
명저 '테일러 경제학' 유명세 탄 존 테일러
개인 현금 지급 600→2000달러 강한 반대
"민간 부문 성장 도모하는 정책 필요하다"
미국 재무장관, 하버드대 총장 등을 지낸 석학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운뎃줄 맨 오른쪽)이 전미경제학회(AEA) 연례 총회 둘째날인 4일(현지시간) ‘이제 미국 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세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윗줄 맨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차례로)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부 차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2001년 노벨경제학상), 도미니크 살바토레 포드햄대 교수,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전 인도중앙은행 총재),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WB) 수석이코노미스트(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서머스 교수, 재니스 에벌리 노스웨스턴대 교수(전 미국 재무부 차관보). (출처=AEA 화상 회의 캡쳐)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경기 부양책을 늘린다고 해서 소비가 확 늘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개인에 대한 현금 지급은 현재 경기 침체를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미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두 석학이 코로나19 이후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은 미국정부의 경기 부양책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4일(현지시간)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중 ‘이제 미국 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화상토론 세션에서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 재무장관(1999~2001년)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2009~2010년), 하버드대 총장(2001~2006년) 등을 지내며 학계와 관가를 넘나들었던 경제 석학이다. 테일러 교수는 ‘테일러 경제학’ ‘테일러 준칙’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역시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1~2005년 재무부 차관을 지냈다.

“현금 무차별 지급, 근거·효과 미미”

서머스 교수의 진단은 단호했다. 그는 미국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추진 중인 미국판 전국민재난지원금이 경기부양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 정부는 900억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미국민 1인당 600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2000달러로 증액할 것을 요구한데 이어 미국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이에 동조하면서 2000달러 지급안이 하원을 통과한 상태다. 2000달러로 증액시 필요한 예산은 3000억달러에 달한다. 한화로 326조 4000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 가정의 94%가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되는 2000달러의 현금 지급이 어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며 “부양책의 규모를 확대한다고 해서 가계지출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머스 교수는 “현재 미국인들의 가처분소득(disposable income)은 과거 평상시보다 오히려 15%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소비가 지지부진한 것은 단순히 손에 쥐고 있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소비는 악화일로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1% 감소했다. 전월(+0.1%)과 비교해 한참 낮은 수치다. 월별 소매판매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건 지난해 3월(-8.3%), 4월(-14.7%) 이후 처음이다.

서머스 교수가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서머스 교수는 평소 영양 보조 지원 프로그램(SNAP), 근로소득 지원 세제(EITC), 자녀 세액 공제(CTC) 같이 정부 재정을 동원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주장해 왔다.

다만 돈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식의 정책은 투입하는 돈에 비해 정책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게 서머스 교수의 지적이다. 서머스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 칼럼을 통해 600달러보다 2000달러가 그래도 소비에 더 낫지 않겠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런 논리라면 5000달러, 1만달러 혹은 그 이상은 왜 안 되는가”라며 “재정 제한의 원칙(a limiting principle)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머스 교수는 이날 현금 뿌리기의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지금 같은 부양책은) 가계에서는 저축 과잉 문제를, 기업에서는 투자 감소 문제를 각각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보면, 올해 봄 미국 정부의 1인당 1200달러 현금 지급 직후 저축률은 40년 만에 가장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재정의 역할을 다시 정립할 때”라며 “적절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영리사업 모델을 발굴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트 팬데믹, 규제 완화 초점 맞춰야”

서머스 교수는 또 지나치게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대표적인 기대인플레이션 지표인 미국 10년물 기대인플레이션율(BEI·Breakeven Inflation Rate)은 이날 2.01%까지 올랐다. 2018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기대인플레이션만 보면 연준의 통화정책 목표치를 이미 넘어섰다. 월가에서는 올해 하반기께 연준이 양적완화(QE) 축소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현재 마이너스 수준인) 미국 실질금리(real interest rate)가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질금리가 급등할 경우 실물경제와 함께 금융시장이 동시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테일러 교수의 진단 역시 비슷했다. 그는 서머스 교수의 분석에 공감하면서 “개인당 2000달러의 현금이 현재 미국의 경기 침체를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테일러 교수는 이어 “정책당국은 급증하는 미국의 부채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재무부는 2020회계연도(2019년 10월1일~지난해 9월30일)의 재정적자는 3조1000억달러에 달했다. 팬데믹발 재정 확장으로 전년 대비 3배가량 폭증했다.

테일러 교수가 방점을 찍은 건 민간 기업의 성장 도모다. 그는 “지금은 민간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재정정책을 제약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테일러 교수는 “지금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건 규제 이슈”라며 “(민간 부문에 대한) 규제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