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순 "피소사실 유출 안 해" 엿새만에 침묵깼지만 '석연찮은 해명'

손서영 2021. 1. 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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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사실을 서울시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엿새간의 침묵을 깨고 입장을 냈습니다. “피소사실을 유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얘기’에 대해 물어봤다고는 밝혔는데, 더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 석연치 않은 해명이란 비판이 나옵니다.

■ 침묵 깬 남인순 “박시장 관련 전화했지만, ‘피소사실’ 유출 안 해”

남 의원은 오늘(5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지난 12월 30일 서울북부지검 발표 이후 제가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저는 ”피소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유출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난 7월2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남 의원이 공개적으로 밝혔던 입장을 재확인한 겁니다.

다만 남 의원은 서울시 젠더특보와 통화를 한 사실은 인정하며 “7월 8일 오전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로 ”박원순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느냐“라고 물어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피소사실 유출’ 의혹이 해소되려면, 여성단체 관계자로부터 피소사실 외에 어떤 말을 들었는지를 남 의원 스스로가 밝혀야 하는데, 남 의원은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얘기를 들었길래 ‘불미스러운 얘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인지, ‘미투사건’을 유추할 만한 다른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남 의원이 직접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남 의원은 거듭된 취재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의당 “질문과 유출, 대체 무엇이 다른가?”

남 의원의 입장 발표를 촉구해 왔던 정의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여성인권운동을 한 여성단체 대표 출신 의원님께 재차 묻는다며, 질문과 유출은 대체 무엇이 다르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있다는 걸 인지했고 피해 사실 확인을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한 것, 그것 자체가 유출”이라며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짓밟는 것이고, 가해를 저지른 이에게 피할 구멍을 마련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조 대변인은 KBS와의 통화에서 “그런 식의 말을 옮긴 행위 자체가 문제인데 그것을 두고 질문한 것과 유출한 것은 다르다고 설명하는 건 지금까지 여성운동을 해온 분의 대응이라고 보기엔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폭력 문제에 있어 가장 핵심이 돼야 할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할 것이냐’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출한 게 아니다.”라는 해명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도 논평에서 “긴 침묵을 깨고 일주일 만에 입을 연 남 의원의 해명은 철저한 부인”이라며 “민주당의 ‘N차 가해’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라며 비판했습니다.

■‘피해자 보호’ 기본 원칙 왜 무시됐나? “그럴 사람이 아닐 거란 믿음”

오랫동안 성폭력 문제를 다뤄온 여성단체 관계자 A씨는 “피해자 정보를 유출하지 않는 건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의 기본”이라며 “특히 거대 권력에 있는 사람의 비위 사실이 나타나면 최우선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보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피소 사실’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남인순 의원과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 모두 이를 모를 리 없는 기본 중의 기본 원칙이라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그 원칙을 흔들리게 한 건 ‘박원순 전 시장이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확고한 자기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남 의원이 이 문제를 크게 보지 않고 “박원순 전 시장을 정치적으로 음해하기 위한 공작” 정도로 보고 평소 친분 있는 여성단체에 쉽게 물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 보호’의 대원칙을 저버린 남 의원의 질문은 가해자에 편을 드는 셈이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위력·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풀 때 늘 등장하는 것이 “이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는 거였다며, 그 전제가 없어져야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NGO 정치권 진출…무뎌진 ‘비판과 견제’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려면 여성단체, NGO의 정치권 진출 과정 즉 역사적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합니다.

남 의원이 서울시에 박 시장 관련 이야기를 전하기에 앞서 통화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영순 상임대표였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1987년 21개 진보 여성 단체들이 발족시킨 여성운동 연합 단체입니다. 호주제폐지와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 제정 등을 추진해 왔습니다.

“여연은 상징성이 큰 단체”라고 여성계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단체를 모은 일종의 ‘우산’ 같은 조직인데, 상징성이 크다 보니 상당 부분 권한이 여연 대표에게 집중돼 왔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여연 출신들이 공직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아서 여성단체가 정치권에 진출하는 주요 통로 중 하나가 돼 왔는데, 이 과정에서 NGO 본연의 역할과 책임이 무뎌지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합니다.

NGO의 정치권 진출은 소수 목소리를 정치세력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비판과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잃게 되면 스스로 ‘권력화’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성운동가 출신 남 의원이 박원순 전 시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접했을 때 ‘피해자 보호’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고, 박 전 시장과의 정치적 동반자 관계 등을 먼저 고려한 것 역시 ‘권력화’의 단면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피소 사실 유출’ 넘어 ‘사건 실체’ 밝혀야

젠더 연구를 해 온 여성단체 관계자는 “남인순 의원이 책임질 부분이 있지만 한 명에게만 책임이 부과되는 건 꼬리 자르기일 뿐이라며, 박원순 전 시장과 피해자 사이에 있었던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소 사실’ 유출 여부도 중요한 문제지만 이를 둘러싼 공방을 넘어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이 얼마나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고 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며 “남 의원도 피해자 슬픔에 공감한다는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조사를 촉구하겠다는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정의당과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남인순 의원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에도 책임 있는 입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낼 메시지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이낙연 당 대표도 몇 차례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며 “추후 국가인권위원회 정식 조사 결과 등이 나오면 다시 입장을 발표할 시간이 주어질 수도 있겠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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