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동결 10조 원유대금·美 제재완화 노린 '의도된 도발'?

홍주형 2021. 1. 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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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수비대 나포 배경 촉각
美, 이란과 핵합의 탈퇴 후 갈등 첨예
경제제재에 韓 동참.. 사실상 교역 중단
이란 강경파 불만 누적.. 실력행사 나선 듯
바이든정부에 핵합의 복원 압박 관측도
정부 "석유대금, 백신 등 활용 협상 중"
이란 정부 "완전히 기술적 사안" 주장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 모습. 오른쪽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타고 온 고속정이다. 사진은 나포 당시 CCTV 모습. 연합뉴스
호르무즈해협 오만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국적 유조선 한국케미호 나포엔 최근 이어진 미·이란의 복잡한 관계 속에 한국의 제재 동참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 행동계획)를 탈퇴한 이후 첨예해진 양국 갈등, 대이란 제재 복원과 동결된 원화 원유 수출대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과 달리, 이란 정부는 한국 선박이 해양오염 활동을 하는 데 대한 ‘명백히 기술적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이란 내부의 정치상황도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동결 원유 수출대금 문제 원만히 논의 중이었는데….”

5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케미호는 4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쯤 오만 하사브 인근 해역에서 이란혁명수비대에 억류됐다. 현재는 이란 반다르아바스항에 정박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선사 및 우리 정부와 직접 연락은 되지 않는 상태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이번 억류 의도와 관련, 이란 석유 수출대금을 둘러싼 강경파의 불만 누적이 원인이 됐다는 관측이 먼저 제기됐다. 미국은 2018년 5월 JCPOA를 탈퇴한 뒤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고, 한국도 동참하면서 이란과 교역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란은 한국에 원유를 수출하고 받은 원화 대금을 사용하지 못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는데, 혁명수비대가 선박 억류를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실력 행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급준비금을 비롯해 우리 은행과 IBK기업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엔 이란의 원유수출대금 약 10조원이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이란 정부와 원만히 협의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란은 최근 한국에 동결된 자금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 펀드인 코벡스 퍼실리티에 결제자금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우리 정부와 논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약품 등 인도적 물품을 거래하는 경우 제재 예외가 허용된다.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의 승인 아래 코로나19 국면에서 우리 의약품, 의료기기를 이란에 수출하는 인도적 교역도 진행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아랍에미리트(UAE)를 향하던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호'(9797t)가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사진은 이란 국영 방송 IRIB가 공개한 현장 모습. IRIB 캡처=뉴시스
10일부터 예정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의 이란 방문 역시 이 같은 배경 아래 추진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최 차관의 이란 방문은 사전에 예정된 만큼 계속 진행하고, 선박 억류 문제와 관련해서도 당연히 의견교환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혁명수비대가 사실상 이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을 정도로 권력이 막강해 독자적으로 돌출행동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복잡한 이란 국내 정치체계에서 수뇌부는 결국 하나로 통합되지만 혁명수비대는 독자적 활동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선 이번 억류가 한국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살해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 1주기를 맞아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2019년에는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나포해 긴장감을 유발했다. 한국과 영국 모두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새로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핵 합의 협상테이블로 돌아오라는 압박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이란, “완전히 기술적 사안”… 테헤란에서도 협의 진행

이란은 외부적으로 이 같은 분석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기술적 사안”이라고 밝혔고, 주한 이란대사도 여러 차례에 유선과 대면으로 진행된 우리 외교부 당국자와의 면담에서 이 같은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선박이 해양오염 활동을 했고, 해양청에서 고소가 들어와 사법절차를 개시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 아래 전문가들은 이번 억류사건을 미·이란 관계와 연계해서 처리하면 오히려 빠른 협의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철저히 한·이란 양자관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란의 한국 유조선 억류(나포)와 관련해 초치된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도착, 취재진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외교부 당국자는 “양국 외교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양측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란 테헤란에서도 우리 대사와 이란 아시아·태평양차관보 간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장관은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회의를 주재했으며 청와대 국가안보실도 지원하고 있다. 강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조속히 나포 상태가 풀릴 수 있도록 외교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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