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이·박 두 대통령은 사면을 구걸한 적 없다

김광일 논설위원 2021. 1. 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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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사면(赦免)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풀이는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하여 줌’, 이라고 돼 있다. 형식적으로는 ‘용서해 주는 자’와 ‘용서 받는 자’가 있다는 전제가 돼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79조는 이렇게 돼 있다. ‘1)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2)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3) 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면하는 자, 즉 용서해주는 자는 대통령이라고 헌법에는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사면 받는 자, 다시 말해 용서 받는 자는 어떻게 돼 있을까. 이번에는 관련 법률인 사면법 제3조를 보면 된다. 사면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사면법 제3조: 사면, 감형 및 복권의 대상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일반사면: 죄를 범한 자, 2. 특별사면 및 감형: 형을 선고받은 자, 3. 복권: 형의 선고로 인하여 법령에 따른 자격이 상실되거나 정지된 자’ 여기서 우리 법률은 사면의 종류를 일반사면, 특별사면,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사면이란 범죄를 사면하는 것이고, 특별사면이란 사람을 사면하는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새해 벽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얘기를 꺼냈다. 그랬다가 강성 친문 세력과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한발 뒤로 물러서는 모양새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특별사면 결정은 법률 행위인 것 같지만 사실상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면이 있는가 하면 종교에서도 사면은 있다. 종교적 사면이라고 하면 흔히 면죄부를 떠올리지만, 그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사면이 있는데, 예를 들어 대한불교 조계종의 경우 가장 높은 어른이 종정이 종단 화합 차원에서 종단 분규로 승적이 박탈된 스님들을 일괄 사면하는 경우가 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특별사면을 할 때, 특히 그 대상이 선거 사범이거나 고위 정치인이거나 대기업 총수이거나 할 때는 정치적 파급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특별사면을 결정할 때는 앞서 말한 특별사면보다 몇 곱절 정치적 파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대통령의 사면 행위를 평가할 때 핵심을 찌르는 관전 포인트를 말씀 드리고자 한다. 첫째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별 사면이 적극적인 사면인가, 아니면 마지못해 하는 사면, 쫓기듯 하는 사면인가, 하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정말 정치적 이해득실 따지지 않고, 꼼수 부리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 선의를 갖고 하는 특별 사면인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나머지 마지못해 하는 사면인지를 분간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권은 최근 지지율 추락을 겪고 있으며, 윤석열 총장의 직무 정지 결렬로 월성 1호기, 울산시장 선거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탄력을 받게 됐다. 문 정권의 죄상이 명백하게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내보였던 사면 카드는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또 하나 관전 포인트는 박근혜·이명박 두 대통령은 사면을 구걸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사면을 구걸하기는커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에도 불응해왔다. 재판 불응의 이유는 이런 모든 형사적 처벌이 앞선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수사를 받다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 오로지 정치적 보복 때문이었다고 봤다. 그가 쓴 자서전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 역시 문재인·노무현 두 대통령 못지않게 정치적 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떠올려 보면 국민들은 당연히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이 사면을 구걸한 적 없는데, 지금 감히 누가 누구를 사면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면 계획을 발표하고 오는 3월1일 3·1절 특별사면 형식으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한다고 가정할 때,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사면을 거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사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다음 정권 교체 때까지 감옥에 그냥 있겠다, 나를 사면하지 말라’, 하고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를 사면하지 말라’, 이 말처럼 국민들에게 울림이 큰 말도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한 이런 상상까지 하는 이유는 전직 대통령 특별 사면에 대한 관전 포인트를 명확하게 다듬기 위함이다. 쫓기듯 하는 사면은 무조건 사면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 붙는 사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낙연 대표가 처음에는 “국민 통합”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가 나중에 “국민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물러서고, “당사자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면서 후퇴한 것이다. ‘국민 통합’에서 ‘국민 공감대’로, 다시 ‘당사자 반성’으로 뒤집기를 하고 있다. ‘국민 공감대’라는 말처럼 도깨비 방망이 같은 말도 없으며, ‘당사자 반성’이라는 것은 앞선 정권에게 현 정권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보라는 것이나 같다. 저쪽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한 전제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은 사면을 안 하겠다는 것이나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작년 10월 형(刑)이 확정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오는 14일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다. 언론에서 흔히 형이 확정돼야 사면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사면법에는 사면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 ‘형 확정’이라는 표현은 없고, 대신 ‘선고를 받은 자’라고만 돼 있다. 1심도 선고요, 2심도 선고다. 형 확정과 1,2심 선고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누가 설명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사실은 올해 80세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1년7개월 자택 격리 기간을 제외하고도 1년3개월을 복역하고 있는 중이고, 새해 69세가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3년10개월을 복역했다. 이미 선고된 형량으로 보면 살아서 출소하기 힘들다.

내란죄 등으로 기소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2년 남짓 복역 한 뒤에 사면됐다. 최순실 국정 관여와 다스 문제 등이 아무리 범죄 여건을 구성한다고 해도 내란죄보다 더 중할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도 인도적 배려는 필요하다. 인도적 배려는 조건 없이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특징으로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내로남불이라고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민 분열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삼아왔다. 부자와 서민, 기업인과 노조, 임대인과 임차인, 서울과 지방, 육사와 비육사까지 편 가르기를 해왔다. 편 가르기 조짐이 보이면 그것은 진정성이 없는 정략적 사면 카드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야당이 비난하는 것처럼, 간보기 사면 카드, 떠보기 사면 카드, 시중잡범에게 하듯 반성문 써오라는 사면(이재오 고문), 넣었다 빼는 지갑 속 사면 카드(이정현 전 의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 향방을 살피는 관전 포인트는 그것이 선거 직전에 하는 사면인가, 아니면 선거 끝난 뒤에 하는 사면인가, 하는 점이다. 여러분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전두환 노태우 사면은 1997년12월22일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나흘 뒤 김대중 당선인이 건의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받아들여서 이뤄진 것이었다. 선거가 끝난 뒤 이뤄진 사면이었다. 지금 여당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사면은 서울시장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사면이다. 선거 직전 사면, 선거 끝난 뒤 사면, 어느 쪽이 진정성이 있는 사면일까. 여러분은 이미 명확하게 아실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형사 처벌을 받고 복역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까지 받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꺼내고 있다. “탄핵 받은 공직자는 사면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법률학자도 있다고 한다. 이런 논리 역시 문재인 정권이 갖다 이용하면서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을 차별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다시 한 번 갈라치기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사면이 아닌 ‘형집행정지’라는 조치로 일단 감옥에서 나오게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사면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우리는 말하려 한다. 하나는 법률적 근거를 가진, 대통령이 하는 사면이다. 둘째는 국민이 하는 국민 사면이 있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이 용서하는 사면이야말로 진짜 사면일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사면은 역사적 사면이다. 역사가 하는 사면이다. 이것이 진짜 사면이다. 미국 포드 대통령이 닉슨 전 대통령을 사면했을 때 지지율이 70%에서 40% 대로 곤두박질쳤다. 포드는 2년 뒤 대선에서 졌다. 하지만 한 세대를 지나 평가가 달라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용기 있는 결단의 하나가 됐다. 케네디의 딸 캐럴라인은 2001년 ‘JFK 용감한 시민상’을 포드에게 주면서 “자신의 정치적 미래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제 공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로 넘어갔다. 문 대통령은 정략적 조건부 사면을 하려고 할 것인가, 국민적 사면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를 생각할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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