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한국 상선 나포 이유는? "한국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중립적 희생자"

김윤나영 기자 2021. 1. 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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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 국적의 유조선 ‘한국케미’가 4일(현지시간) 걸프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함정들에 의해 나포되고 있는 모습. 이란 국영 TV는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해협에서 환경 오염 유발을 이유로 ‘한국케미’를 나포했다고 보도했다. 테헤란|타스님통신AP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 상선을 나포한 데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 출범에 맞춘 다양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과의 원유 수출대금 활용 협상은 물론 향후 미국과의 이란 핵합의(JCPOA) 재협상까지 염두에 둔 의도적 도발이란 것이다.

이란은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북서쪽 해상에서 석유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하면서 표면적인 이유로 해양 오염을 들었다. 이란 외무부는 “이 사안은 완전히 기술적인 조치이며 해양 오염을 조사하라는 법원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란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당장 한국 선사 측은 “에탄올 등 3종류의 화학물질 7200t이 실려 있었다”며 환경오염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란은 2013년에도 해양 오염을 이유로 인도 유조선을 나포한 바 있지만 진짜 목적은 이라크 원유 수입을 늘린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번 나포가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 대금 문제와 관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한국의 은행 두 곳에는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 약 70억달러가 묶여있다. 미국이 JCPOA를 탈퇴하면서 이란에 가한 경제 제재로 동결된 자금이다. 최근 한국과 이란은 이 자금을 백신 등 의약품과 방역 물품 구입에 사용하는 방안을 협상 중이었고, 최종건 외교부 차관은 이번 주말 테헤란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한·이란 협회 김혁 사무국장은 “이란이 한국 내 동결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대신 미국을 움직여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정부와 언론들은 이란의 이번 나포가 한국 동결 자금 협상을 목표로 했더라도 결국은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고 보고 있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바이든 정부에서 대이란 경제 제재를 풀고 JCPOA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미 국무부 대변인은 4일 “이란 정권의 국제사회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규정했다.

CNN은 이번 나포가 JCPOA 재협상 복귀의 문턱을 높여온 바이든 정부를 겨냥했다고 분석했다. 이란은 전날 우라늄 농축 농도를 JCPOA가 정한 한도보다 많은 20%로 올리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힌 터였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선박을 나포해 JCPOA 복귀를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CNN은 “한국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중립적 희생자”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임기 말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차에 나포를 단행했다는 점도 대미 압박용이라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이란은 미국이 암살한 가셈 솔레이마니 전 쿠드스 사령관 1주기를 맞아 보복을 다짐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철수 사흘 만에 니미츠 핵추진 항공모함을 걸프 해역에 재배치했다. 이란은 5일부터 중북부 셈난주 등에서 이틀간 대규모 합동 드론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AP통신은 “이란이 한국 유조선 압수로 미국과의 긴장을 더 고조시켰다”고 했다.

미국과 군사적 충돌까지는 바라지 않는 이란이 긴장 수위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나포를 활용했을 수 있다. 이란과 미국을 중재해온 유럽연합(EU)의 한 외교관은 CNN 인터뷰에서 “이란이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현 미국 행정부의 과잉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며 “이란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하나를 찔러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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