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대에 무엇을 물려줘야 하나
한 해가 지나갑니다. 젊은 시절의 12월은 친구들과 연인과의 만남으로 활기찼고, 중년의 12월은 직원 및 거래처와의 회식은 물론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노년의 12월은 누구라도 만나면 좋고 더욱이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면 몇 배로 반갑습니다.
12월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 있어 그들의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바로 첼리스트 문태국 입니다. 그는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노예진과 함께 태어난 지 일곱 달 된 딸과 함께 '객석' 편집실을 찾았습니다. "객석 할아버지께 인사드리자." 똘망똘망한 눈빛의 아기가 좋다고 웃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들의 결혼식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2세를 낳았다니. 문태국과 처음 만났던 날에 날카롭게 다가왔던 파릇파릇한 청년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아기와 눈 맞추며 아비 노릇을 하는 그의 모습이 꽤나 낯설기도 합니다. "딸내미는 무엇을 시킬꼬?"라고 물으니, 바이올린을 공부시켜 가족으로 구성된 피아노 3중주단을 만들고 싶다고 하네요. 모두들 "아이쿠, 바이올린이 얼마나 힘든데"라고 말했지만, 아이의 미래를 논하는 부부의 표정에는 행복과 기쁨이 넘쳐 보입니다.
며칠 전에는 첼리스트 박진영과 그의 남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데이빗 맥커럴 씨와 간단한 점심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박진영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데요, 독일에서는 태아의 성별을 미리 가르쳐주기 때문에 '딸 바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가족에게 "딸은 피아노를 공부시켜서 가족으로 구성된 피아노 3중주단을 만드세요"라고 덕담을 건넸습니다.
'객석'을 맡은 지 7년이 되어 갑니다. 한 달에 하나씩 태어나는 책도, 그 안을 채우는 음악가들도 성장과 성숙의 시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앞에 놓고 보니 '객석'은 현장의 소식을 실어나르는 '소식지'임은 물론, 시간이 흐르면 그들의 추억과 젊은 날의 초상을 담고 있는 '앨범'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열정이 가득했던, 음악밖에 모르던 젊은 음악가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살펴보면 젊은 음악가들의 부모는 음악가가 아닌 경우가 많지만, 많은 노력과 수고를 통해 자녀들을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키운 세대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이라는 가문의 유산을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한 길을 걸으며 때로는 사제지간으로, 때로는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축복이라 생각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음 세대는 지금의 부모세대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야 할텐데 하는 걱정도 듭니다.
이 세계에도 유행이 있어 예술이 변화의 옷을 입고 새로운 작품을 내놓고 하지만, 예술을 지원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만은 유행을 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저 묵묵히, 우리의 삶에는 예술이 응당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묵직하게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예술 환경과 제도가 바뀌고 우리 음악가들이 모두 청중을 위한 자세로 열심히 산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삼스럽게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12월 5일 코로나19로 인해 국가 봉쇄령을 내리기 전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중 한 문장이 가슴을 저며 옵니다."지금 우리에게는 예술가들이 주는 것, 그들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술가와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이 절실합니다. 독일은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예술과 문화를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국가이며 이는 게속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 가치있는 일을 지키기 위해 정부는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하는지를 보여준 담화문이었는데요,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언제쯤 이러한 생각과 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P.S. 2021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올해는 제발 많은 분들이 공연장을 찾을 수 있고, 다양한 공연들을 즐겁게 관람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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