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 창작 레퍼토리 발굴 지원사업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5개 연극 작품이 새해가 된 2021년, 이 달부터 겨울의 끝자락이 될 2월까지 차례대로 서울 대학로예술극장과 아르코예슬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다.
2008년부터 시작된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은 기획과 제작부터 쇼케이스, 본 공연을 비롯해 유통까지 공연예술 전 장르에 걸쳐 단계 별로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예술위의 대표적인 지원사업으로 지난해까지 총 206개 작품의 초연 무대를 지원한 바 있다. 2020년에는 연극, 무용, 전통예술, 창작뮤지컬, 창작오페라 등 5개 장르에서 총 21개 작품을 선정해 초연으로 선보인다. 지난 12월 11일 무용 '평안하게 하라'로 문을 연'올해의신작'은 코로나19의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두 좌석 거리두기와 철저한 방역 하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연극 장르는 오는 8일 극단 김장하는날의 '에볼루션 오브 러브'를 시작으로 창작집단 푸른수염 '달걀의 일', 극단 산수유 '누란누란', 극단 명작옥수수밭 '깐느로 가는 길',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고역'이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이번에 선정된 5개 연극 작품은 서로 만나고 부딪히며 결국엔 하나가 되는 '경계'에 서서 현대사회를 바라보고, 외면받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등의 여러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냄으로써 다양한 화두와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것이 특징이다.
■사랑을 바라보는 12가지 관점 '에볼루션 오브 러브'
먼저 8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첫 번째 연극 작품 '에볼루션 오브 러브'는 '인간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사랑은 어디로, 어떻게 진화해나가는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랑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철학적, 생물학적, 심리학적 등 다각도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 종국엔 사회를 비추어보고 담론을 형성하는 '본격교양연극'을 표방한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각각의 주제를 띄며 해설자가 극 전반을 이끌어나가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해설자는 무대와 객석, 작품 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생동감과 입체감을 더한다. 빠르게 전환되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1인 다역을 연기하고, '사랑'을 키워드로 다원화된 세계관을 반영한 영상 언어가 멀티스크린을 통해 선보여질 예정이다.
■여성 서사로 그려진 신라시대의 신화 '달걀의 일'
프랑스의 유명 동화 '푸른 수염' 속 여성들의 실종사건을 밝히기 위해 위험과 모험을 감수하며 수없이 많은 방을 하나하나 열어본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창작집단 푸른수염은 '에볼루션 오브 러브'보다 하루 늦은 9일부터 1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달걀의 일'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기존에 남성 중심으로 쓰인 신화와 영웅의 이야기에서 탈피해 여성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써내려간 현대판 신화물로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린다. 경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은 여성 고고학자와 할머니, 남성, 폭력, 유물, 전설, 신라시대 '향가'를 한데 다룸으로써 전통적인 소재 속 새로운 리듬과 선율을 발견하는 독창적인 시도를 펼친다. 이로써 굳어진 '기존의 것'에 균열을 내고 틈을 벌려 여성의 이야기가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대지를 다지는 작업을 연극을 통해 구현한다.
■자본주의로 퇴색된 지식인의 세태 고발 '누란누란'
층층이 알을 쌓아놓은 모양처럼 위태로운 상황을 일컫는 '누란'. 극단 산수유의 '누란누란'은 대학교수와 지식인들의 사회에 '구조조정'이라는 키워드를 던져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대학의 이면을 살피고 '권위'와 '명예' 뒤에 가려진 민낯을 적나라하게 해부하는 작품이다. 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학을 배경으로 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이 당면한 상황 속에서 위기를 절감하면서도 대응력을 상실한 다양한 인물들의 단면을 '누란지세'에 빗대어 바라본다. 또한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사유의 중심에서 굵직한 명제를 제공해주던 순수학문들의 퇴색되어가는 본질과 인문학의 가치를 되짚음으로써 팽팽한 대립 속에 이어지는 갈등의 비이성적인 양상을 부각시킨다. 이 작품은 오는 22일부터 3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남파간첩과 전직 안기부 요원이 함께'영화'를 만든다면 '깐느로 가는 길'
'누란누란'과 같은 기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깐느로 가는 길'은 민주화를 이룬 지 11년이 지난 1998년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전직 안기부 요원의 목숨을 건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담아낸 연극이다. 영화를 소재로 하는 만큼 다양한 오마주가 등장하고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지만 웃음 속에서 관객을 향해 던져지는 질문들은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남한에 IMF 사태가 발생했던 1998년은 북한에게도 '고난의 행군' 기간이라는 최악의 기아 사태가 발생했던 시기였다. 이와 동시에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고 소련의 해체가 가속화되는 등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뤄졌던 시기다. 이 가운데 공산주의 몰락을 경험한 북한 엘리트 출신의 간첩과 군사정권의 몰락을 겪은 인물을 통해 정권의 유지와 영속을 위해 설계된 이념이 개인의 정체성에 얼만큼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이념과 실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이 과연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난민'을 주제로 공동체와 사회의 의미를 고찰 '고역'
2020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 부문 마지막 작품은 공연연구소 탐구생활의 '고역'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18년 여름,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던 상황을 다룬다. 이를 통해 인간이 타인의 삶을 위해 감내할 수 있는 불이익은 어디까지인지, '공생'과 '배척' 사이에서 한국사회 및 나아가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태도와 자세를 살핀다. 연극 '고역'의 신동일 연출은 5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작품의 주된 모티브는 난민 문제이지만 이를 통해 타인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지를 묻는다"며 "본질은 용서와 받아들임"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다음달 19일부터 2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한편 2020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로도 만나볼 수 있다. 5개 작품 중 총 3개 작품이 생중계를 진행하는데 '달걀의 일'은 오는 15일 저녁 8시, '깐느로 가는 길'은 오는 22일 저녁 7시 30분, '고역'은 다음달 23일 저녁 8시에 진행된다.
황금실 예술위 공연창작부 과장은 "공모 당시 194개 작품 중 엄선된 작품 다섯 작품을 이제 무대에 올리게 됐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에 다소 위축된 분위기에서도 창작 작품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다각도로 마련하려 애썼다"며 "동시대의 인간사 고민을 담아낸 작품을 엄선했다. 코로나 시국에도 연극은 계속되길 바란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