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직원들은 왜 '노조 깃발' 높이 들었나
(지디넷코리아=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자유로운 토론과 열린 기업 문화로 널리 알려졌던 구글에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초기 참여자는 200명을 조금 넘는 수준.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구글에 노조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구글 직원들이 미국통신노조(CWA)와 연대해 ‘알파벳 노조'를 결성했다고 보도했다. 잘 아는대로 알파벳은 구글 지주회사다.
초기 참여 인원은 230여 명. 주로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 직원, 계약 직원 등이 동참했다. 앞으로 이들은 노조 참여자들을 적극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구글은 최고 수준의 복지와 임금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자유로운 토론과 열린 기업 문화를 지향했다. ‘사악해지지 말자’는 기업 모토 역시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최근 몇 년 사이에 구글은 크고 작은 구설수에 시달렸다. 사내 성폭력 같은 윤리적인 문제부터 AI 연구자인 팀닛 게브루 해고까지 적잖은 논란에 휘말렸다. 이와 함께 구글의 정신이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 중 수 많은 구글 직원들을 분노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 2018년 '안드로이드 대부' 앤디 루빈 성추문이다.
2018년 성추문과 인명살상 AI 개발 등으로 안팎서 비판
“OK. 구글. 진짜냐?”
2018년 10월말. 전 세계에 있는 구글 직원들이 거리로 나섰다. 뉴욕에선 3천명 가량이 시위에 참여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수 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수 십 명의 구글 직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사악해지지 말자’는 기업 모토를 갖고 있는 구글에선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당시 직원들은 구글이 사내 성 범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지 않은 데 분노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고위 임원들이 거액의 퇴직금까지 받은 사실이 공개된 때문이다.
그 중심엔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던 앤디 루빈이 있었다.
앤디 루빈은 안드로이드 개발 작업을 진두 지휘한 인물이다. 구글이 모바일 플랫폼 최강자로 떠ㅗ르는 데 절대적인 공을 세웠다. 하지만 루빈은 2014년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면서 구글을 떠났다.
퇴사 당시 '새로운 도전'으로 추앙받았던 루빈의 어두운 그림자가 폭로된 건 그로부터 4년 뒤였다.
뉴욕타임스는 2018년 10월 25일 앤디 루빈이 퇴사한 건 부하 직원을 상대로 성 범죄를 저지른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구글 고위 경영진이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앤디 루빈에게 거액의 퇴직금까지 지불했다고 폭로했다.
이 보도로 앤디 루빈과 구글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모바일 혁명의 주역으로 꼽히던 루빈은 하루 아침에 사악한 인물로 전락했다.
더 큰 타격을 받은 건 구글이었다. ‘사악해지지 말자’는 기업 모토를 내건 구글이 성 범죄자를 감싼 것으로 드러난 때문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구글의 행보에 직원들은 크게 분노했다. 전 세계의 수 많은 구글 직원들이 항의 시위에 나선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구글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보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국방부의 인명살상용 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제공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메이븐(Maven)'으로 명명된 국방부 프로젝트는 2017년 7월 시작됐다. 구글의 인공지능 이미지 인식 기술을 활용해 드론이 수집한 영상 자료를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구글은 국방부와 1천만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2018년 중반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구글 직원들은 분노했다. 자신들이 개발한 AI 기술이 악한 일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결국 구글은 2019년 초까지만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 손을 뗐다.
구글은 또 2018년 8월 중국 정부의 검열 기준에 따라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드래곤 플라이’ 프로젝트 때문에 거센 비판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일부 구글 직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설립 논의로 이어졌다.
작년 1월부터 노조 논의 본격화…통신노조 도움받아 설립
미국 IT 전문매체 프로토콜에 따르면 노조 설립 얘기가 본격 거론된 것은 2020년 1월이었다. 몇몇 직원들이 미국통신노조(CWA)에 노조 설립 절차를 문의했다.
그리곤 비밀스럽게 움직였다. 주로 회사내 가까운 친구나 동료들에게 조심스럽게 노조 얘기를 꺼내는 방식이었다. 대다수 구글 직원들은 노조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들의 비밀스럽게 움직인 건 회사의 보복 우려 때문이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지난 해 10월 노조 준비팀에 합류한 딜런 베이커는 프로토콜과 인터뷰에서 “한번에 한 명씩 추가해 나갔다”면서 “알파벳의 보복을 우려해 신중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창립 멤버로 모인 230여 명은 이런 과정을 통해 합류한 인물들이다.
물론 ‘알파벳 노조’는 갈 길이 멀다. 아직은 교섭단체로 인정받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측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낼 권한도 없다. 알파벳 노조도 당분간은 교섭단체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할 계획도 없다.
대신 회사내에 노동조합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는 쪽에 주력할 계획이다.
향후 쟁점 역시 임금인상 같은 일반적인 문제 뿐 아니라 윤리나 책임성 같은 구글 트규의 문제들도 적극 거론할 계획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최근 구글은 기로에 서 있다. 한 때 자유로운 토론이 살아 있는 기업으로 통했던 구글이 지금은 관료주의와 차별이란 거대한 장벽을 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최근 불거진 팀닛 게브루 퇴사 사건이다. AI 윤리 전문 연구자인 게브루 박사는 최근 구글 알고리즘의 편향성 문제를 지적한 논문 발표를 놓고 회사와 갈등을 빚은 끝에 결국 퇴사했다.
구글 측은 자발적 퇴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게브루 박사는 “해고 당했다”고 맞서고 있다. 게브루 해고 공방은 “구글 정신이 변질되고 있다”는 직원들의 우려에 불을 지핀 사건으로 꼽힌다.
사악해지지 말자던 구글, 노조 외침에 어떻게 답할까
체위 쇼 알파벳 노조 부위원장은 프로토콜과 인터뷰에서 “최근 2년 사이에 구글 (특유의) 문화를 제거하고, 경영진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가 계속돼 온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가치를 따르고 모든 직원들을 정당하게 보살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조합이다"고 강조했다.
한 때 자유로운 토론이 살아 있는 열린 직장으로 통했던 구글은 지금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각종 사건들은 단순한 성장통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준 것으로 풀이된다.
구글의 노조 출범 사건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건 이런 정서 때문이다.
‘사악해지지 말자’고 외쳤던 구글은 내부의 이런 목소리에 어떻게 대응할까? 미국 정부의 규제 칼날 때문에 가뜩이나 분주한 구글 경영진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
Copyright © 지디넷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