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걸 깨부수고 새로운 서사"..'올해의 신작' 연극편

이재훈 2021. 1. 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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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서울=뉴시스] 극단 김장하는 날 연극 '에볼루션 오브 러브'. 2021.01.0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정해지고 주어진 서사가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잖아요. 특히 여성은 목걸이, 빨간 립스틱 등으로 지어진 서사의 패턴에 가둬놓죠. 가부장적 사회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달걀의 일'의 주인공은 기존 걸 깨부수고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액션을 취하죠."(창작집단 푸른수염 안정민 대표)

사랑, 여성, 학교, 난민, 남북…. 익숙한 것을 다루지만 다르게 보는 시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주최·주관의 우수 창작 레퍼토리 발굴을 위한 대표 지원사업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들이 추구해온 태도다. '2020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연극 5개 작품은 외면받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낸다.

극단 김장하는날의 '에볼루션 오브 러브'(8~1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창작집단 푸른수염 '달걀의 일'(9~17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산수유 '누란누란'(22~3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명작옥수수밭 '깐느로 가는 길'(22~3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고역'(2월 19~2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이다.

'에볼루션 오브 러브'는 '본격교양연극'을 표방한다. 인간의 사랑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철학적, 생물학적, 심리학적 등 다각도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5일 온라인으로 만난 극단 김장하는날의 이영은 연출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찾지못해 왔다"면서 "사랑이 학습인지 본능인지 궁금했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차별·편견·폭력에 맞서 '진화 의지'를 지녀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창작집단 푸른수염 연극 '달걀의 일' . 2021.01.0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경주가 배경인 '달걀의 일'은 여성 고고학자와 할머니, 남성, 폭력, 유물, 전설, 신라시대 '향가'를 한데 다루며 전통적인 소재 속에서 새 리듬·선율을 발견한다.

기존에 남성 중심으로 쓰인 신화와 영웅의 이야기에서 탈피한다. 여성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써내려간 현대판 신화물을 표방한다.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됐을 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달걀의 일'을 쓰고 연출한 안정민 대표가 이끄는 '푸른수염'은 프랑스 동화 '푸른 수염' 속 여성들의 실종사건을 밝히기 위해 위험과 모험을 감수하다는 의미에서 지었다.

안 대표는 '사랑연습 갈비뼈 타령'과 '당곰이야기', '바리이야기' 등 여성서사로 주목 받아왔는데 사실 '달걀의 일'로 여성서사를 처음 썼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극단 산수유 연극 '누란누란'. 2021.01.0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그는 관객들이 점차 여성 서사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봤다. "이전에는 사회에서 약자로 몰아 세워진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고발적 관점"이었다면, "점차적으로 여성이 원하는 세상, 여성의 목소리, 피해자를 피해자로 바라보는 것을 떠나서 세상의 구조를 재배치하는 시도로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달걀의 일'에서도 아픈 기억을 객관화해 발굴하고, 그 기억 속에서 서러울 것을, 즉 여성의 역할과 피해자의 역할을 부여 받는 것을 넘어서고자 했다"면서 "여성 서사가 사회에서 건드리는 방식이 고발과 사실 폭로였다면, 점차적으로 새로운 여성의 입지와 새로운 여성의 입지를 상상해내어 침범하는 극장의 언어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산수유의 '누란누란'은 대학교수와 지식인들의 사회에 '구조조정'이라는 키워드를 던진다. 대학의 이면을 살피는 동시에 '권위'와 '명예' 뒤에 가려진 민낯을 해부한다.

류주연 연출은 "대학 사회가 본격적으로 물질화되고 자본화돼 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홍창수 작가도 "대학에 몸 담고 있는 구성원들인 교수, 학생들이 본래의 정서나 목적을 잃어가며 물질화된 풍경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극단 명작옥수수밭 연극 '깐느로 가는 길'. 2021.01.0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명작옥수수밭의 '깐느로 가는 길'은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민주화를 이룬 지 11년이 지난 1998년, 남파 간첩과 전직 안기부 요원의 목숨을 건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다룬다. IMF, 김정일의 등장, 소련의 해체 등 급격한 사회변화를 스케치한다. 최원종 연출은 "이념의 공백, 상처과 보듬고 치유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공연연구소 탐구생활의 '고역'은 지난 2018년 여름,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던 상황을 다룬다. '공생'과 '배척' 사이에서 한국사회가, 나아가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태도와 자세를 살핀다.

신동일 연출은 "용서가 주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루면서 나 아닌 타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다루고자 했다"고 전했다.

2008년 출발한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은 제작부터 유통까지 공연예술 전 장르에 걸쳐 단계별(기획➝쇼케이스(무대화)➝본 공연) 연간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적인 지원사업이다. 지난해까지 총 206개 작품의 초연 무대를 지원했다.

[서울=뉴시스] 공연연구소 탐구생활 연극 '고역'. 2021.01.05.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하지만 194개 단체가 서류를 낸 이번 사업은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신동일 연출은 "서류 제출, 쇼케이스, 본공연까지 오는데 여러 참여진들이 코로나19 때문에 고생했다"면서 "이렇게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것이 다행인데,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연출, 작가들은 창작산실이 있어 다행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18년 창작산실에 '세기의 사나이'가 선정되기도 했던 최원종 연출은 "연극계에서 최고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은 홍보 및 작품의 디벨롭, 극장 시스템까지 모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고 전했다.

"그래서 오로지 작품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연출의 새로운 시도와 스타일을 확장시킬 수 있어서 연출력도 발전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창작부 연극 담당인 황금실 과장은 "CGV와 업무 협약, 네이버 후원하기 도입 등 의미 있고 도전적인 유통망을 만들어왔다"면서 "지난 2019년에 대본 공모사업을 부활시켰는데 이번에 한 대본을 보고 영화화 작업에 관심을 갖는 곳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달 11일 무용 '평안하게 하라'로 문을 연 '올해의신작'은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따르고 있다. 두 좌석 거리두기 등을 적용 중이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로도 만나볼 수 있다. '달걀의 일' 15일 오후 8시, '깐느로 가는 길' 22일 오후 7시30분, '고역' 2월23일 오후 8시 중계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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