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그래도 되는' 사람들 / 이재훈
[한겨레 프리즘]
이재훈 ㅣ 사회정책팀장
한국은 혼자 힘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다. 이들이 일상의 공간에 살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고 특정한 공간에 가둬두고 배제한다. 이 특정한 공간 안에서 이들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한 사람당 여러 명을 맡아 생활을 돕는다. 돕는 이들은 주로 중년의 여성들이거나 이주노동자들인데, 이들에게 주어지는 건 최저임금과 과중한 노동, 이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뿐이다. 노인들이 주로 머무는 요양원과 요양병원, 장애인거주시설이 특정한 공간의 대표적인 예다.
위기가 닥치면 사회의 한계는 명징하게 드러난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한국 사회는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카드를 꺼냈다. 거창한 의미를 담은 전문용어인 것 같지만, 실상은 노화와 장애라는 피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닌 개인이 감염병에 걸리면 같이 살던 비감염인들도 그저 같은 정체성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한 공간에 가둬두고 그 안에서 당신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는 조처다.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이 그랬고, 다수의 요양병원·요양원이 그랬다. 그 결과 청도대남병원에선 한국의 코로나19 첫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망자 900명 가운데 35.1%(316명)는 요양병원·요양원에서 나왔다. 국가는 꿈쩍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에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원에 확진자가 생기자 또다시 시설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들과 종사자들을 동일집단으로 묶어 격리했다.
애초 노인과 장애인을 시설에 가뒀을 때까지만 해도, 이 격리는 모든 일을 효율성으로만 재단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 탓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이들을 모아둬야 최소한의 인원과 비용만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감염병 위기가 발생하자 또 다른 진실이 폭로됐다. 노인과 장애인, 이들이 거주하는 시설 종사자들의 동일집단 격리는 집이나 병원, 생활치료센터에서 개별적으로 격리된 채 치료받는 ‘일반’ 확진자들과 이들이 엄연히 급이 다른 집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한국 사회의 그래도 되는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가장 최근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보면, 지난해 9월까지 모두 1571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다. 하루 5.7명꼴이다. 10~12월 통계가 보태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코로나19 사망자보다 1.7배나 많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에 대해 한국은 코로나19와 맞설 때처럼 사회 전체를 멈추자고 호소하지 않는다. 그렇게 국가가 꿈쩍하지 않아도, 산재 사망자 주변에서 일하던 그래도 되는 사람들은 오늘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공장으로, 회사로, 건설 현장으로 묵묵히 출근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자격’을 지닌 건 역설적으로 산재 사망자의 유가족들뿐이다. 이 유가족들이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법을 만들자며 한달 가까이 곡기를 끊고 있는데, 174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중대재해가 터져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최대한 처벌하지 않는 법안을 내밀어놓고 이 정도로 타협하자고 다그치고 있다. 그러면서 새해 벽두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전직 대통령 2명에 대한 ‘국민통합형’ 사면 제안 뉴스들뿐이다.
이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산재 사망자와 그 동료들, 그리고 유가족들을 동일집단 격리하고 당신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둬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단식 중인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를 찾아 “야당이 법안 심의를 거부”해서 법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검찰개혁 관련 법들과 달리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해요”라는 반문을 듣게 된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정부가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여전히 앞세울 수 있을까.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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