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쏙 빼는 '우리 이혼했어요', 이 도발적인 예능의 진면목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1. 1. 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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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지만 평가하기는 어려운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조선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는 겉모습과 달리 여린 속살을 가진 열대과일 같다. 이 프로그램의 참맛을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온도차가 극심한 이유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이해가 가는 오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방송을 통해 만난단다. 채널 명에 걸맞지 않은 서구적인 설정에다가 전 방위적으로 자극적인 맛을 보여주는 TV조선의 새 예능이라니 그 선입견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육아, 싱글, 가족, 중년 등등 하다하다 여기까지 왔느냐는 생각이 신선하다는 반응보단 일반적이다.

기획 의도나 실제 방송이 어떻든 설정부터 상식을 들쑤시고, 관음을 자극한다. 금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동안 방송에서 굳이 들려주지 않고 보여주지 않았던 이야기다. 지금까지 결혼과 이혼, 부부 문제를 본격 다루는 예능은 <미운 우리 새끼>처럼 한 쪽만 보여주며 짠하게 웃기거나 <동치미>처럼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풀어냈다. 그런데 7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한 세대와 사연, 사유를 가진 이혼 부부가 등장해 이혼 이후 남겨진 사람과 현실을 카메라 앞에 펼쳐 보인다. 일상적인 일이 아닌 만큼, 최대한 화면에 제작진과 카메라를 감추는 일상성을 강조하는 요즘의 관찰예능 방식이 아니라 초창기 MBC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기획된 설정이 도드라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3년 만에 뭉친 신동엽과 김원희 콤비의 맛깔 나는 만담과 자막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드라마'다. 스스로 관찰예능이 아니라 '리얼타임 드라마'라고 부른다. 캐릭터는 현실에서 가져오고 일상에 이벤트를 만들면서 스토리를 만든다. 그래서 기승전결이 따로 필요 없다. 갈등, 긴장, 서스펜스 모두 다 있으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의식한다는 점에서 사전제작이 적은 우리네 인터렉티브한 드라마 제작환경과 비슷하다.

시청자들과 눈물 챌린지를 펼칠 정도로 가슴 절절한 깊은 감정선의 한편에 꽤 높은 성적 긴장감이 있다(그리고 스튜디오에 신동엽이 앉아 있다). 설정 자체에 가짜가 끼어들 일이 적다보니 몰입으로 인도하는 리얼리티는 어떤 드라마보다 높다. 남겨진 자식, 부모, 집안 갈등 등이 분노를 유발하면서도 각자의 사정과 사연이 모두 이해가 되는 잘 쓴 드라마다. 보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도록 속상하고 답답한 것은 이 이야기가 드라마로 끝나지 않는 현실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회에서는 '이혼이 하나의 실패가 아닌 선택'이라는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이렇듯 이혼을 돌아보면서 시작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이혼 자체가 아니라 가족과 행복과 관계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삼아야 하는 소중함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혼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갖는 현실의 무게와 대화를 함께 보면서 결혼과 부부관계의 여러 측면과 갈등 상황에서 지켜야 할 '소중함'에 대해 각자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 예능이 문제적이고 도발적이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혼 부부의 만남을 주선한 설정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에 있다.

관찰예능이 드라마의 자리를 대체하리라는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살림남>, <미우새> 등이 시트콤의 영역을 대체했다면 <우리 이혼했어요>는 노골적인 제목 그대로 주말 드라마다(그런 점에서 요일 변경은 아쉬운 결정이다). "두 분의 드라마는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화면이 끊기면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갖고 다음 주를 기다리게 된다. 형식만 다를 뿐 드라마를 감상하는 시청자의 마음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호흡이 긴 드라마 또한 그렇듯, 아직 명작과 망작 사이의 평가를 내리기 이르다. 초반 빌드업은 훌륭했으나 단편이나 6부작 미니시리즈가 아닌 긴 호흡의 연속극으로 계속 이야기가 이어질 경우 지금까지와는 다른 평가를 내릴 소지가 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전개와 결말과 실제 삶 사이의 괴리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끝난 관계에서 억지로 에피소드를 만들려다보면 현실과 방송을 위한 스토리가 분리되면서 이 드라마에 몰입했던 근간인 리얼리티가 깨지게 된다. 극작가의 개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이 예능이 가진 재미의 주류가 웃음이 아니라 눈물임을 생각했을 때 한 번 어긋난 이야기는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이혼했어요>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국가 정책적, 사회적으로 대두된 오늘날 결혼과 관계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입견을 거두고 한번 보기를 추천하지만, 평가를 내리는 데는 주저하게 만드는 문제적인 프로그램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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