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전사의 천하체계
시진핑 시대 외교의 주요 구호인 ‘인류운명공동체’, 유라시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일대일로 정책은 새로운 ‘천하체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것이다. 중심은 중국이며 ‘충성’하는 국가에는 경제적 이익이, ‘불충’한 국가에는 보복이 주어지는 ‘21세기 조공질서’이다. 공유할 가치는 희미한데, ‘돈의 힘’으로만 유지되는 ‘인류운명공동체’를 세계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워싱턴의 백인들은 도시의 남서쪽에는 가지 않는다. 흑인과 라틴계가 주로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위태로워지고 있던 2019년 7월, 자오리젠(趙立堅) 주파키스탄 중국대사관 공사가 트위터에서 미국을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유엔에서 미국을 비롯한 22개국이 중국의 신장위구르 ‘재교육’ 강제수용소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자오리젠이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꼬며 반격에 나섰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수전 라이스(바이든 행정부의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 국장)가 “당신은 수치스러운 인종주의자”라고 비판하자, 자오리젠은 “진실이란 아픈 법”이라고 맞받았다.
얼마 뒤 자오리젠은 트위터에 “파키스탄을 떠나게 됐다”며 고별인사를 올렸다. 물의를 일으켜 교체된 것일까, 추측이 떠도는 사이 그는 그해 8월 파격적으로 외교부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2020년 3월12일, 자오리젠 대변인은 “미군 병사들이 전염병을 우한에 가져왔을지도 모른다”며 미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국에 퍼뜨렸을 수 있다는 음모론을 영어와 중국어로 트위터에 올려 미국을 발칵 뒤집었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시진핑 시대 중국 외교의 날카로운 혀다. 중국 국내에선 트위터 사용이 금지돼 있지만,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언론들은 자오리젠이 미국과 싸우는 트위터 내용을 상세하게 ‘중계’한다. 대변인 자오리젠은 이제 중국이 미국에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영웅이 되었다.
자오리젠의 성공담 이후 여러 중국 외교관들이 잇따라 트위터 등을 통해 ‘말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4월 루사예 주프랑스 중국대사는 “코로나19에 대한 서방의 대응은 ‘느림보’”라며 “프랑스 양로원 직원들이 밤중에 임무를 포기해 수용자들을 굶기고 병들어 죽게 했다”고 주장해, 프랑스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중국 외교관들의 공세적 행태는 ‘늑대전사 외교’라는 악명을 얻었다. 아프리카에서 전직 중국 군인이 미국인 악당들을 물리치고 중국인과 현지인들을 구한다는 ‘중국판 람보’ 영화인 <늑대전사>(戰狼)에 비유한 표현이다.
왜 시진핑 시대 들어서 중국 외교는 이토록 공세적으로 변했을까.
중국 외교의 강경함은 국내 정치에서 나온다.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은 마오쩌둥 시기에는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뤄 건국한 것(站起来),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대에는 급속한 경제 발전(富起来)에서 나왔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 들어 초고속 성장은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고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빈부·도농·지역 간 격차는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동시에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흔들었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강해짐(强起来)으로 새 정통성을 만들기로 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중국의 꿈(中國夢)을 이루겠다고 선포했다. 그에 따라 시진핑 국가주석은 ‘21세기의 황제’로서 천하를 호령하고, 천하가 중국을 떠받드는 강력한 중화제국의 부활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려면, 실력을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힘을 기르는 덩샤오핑 시대의 외교 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의 틀에서 벗어나 힘을 과시하며 할 일을 하는 분발유위(奮發有爲)로 강한 중국을 과시해야 한다. 한편에선, 근대에 들어와 중화민족이 외세의 침략으로 겪은 지난한 고통을 강조하면서 중국공산당이 100년에 걸쳐 중국을 ‘구원’했다는 애국주의 서사를 더욱 요란하게 선전한다. 시진핑 시대의 구호인 ‘4개의 자신’은 인민들이 중국의 노선, 정치체제, 지도 이념, 문화에 자신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며, 서구의 이념과 체제를 배격한다. 이런 구도에서 외부의 비판에 타협하지 말고 강하게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반중 공세를 강화할수록, 시진핑 지도부는 인민들이 위기에 맞서 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요구하며 국내 비판을 침묵시켜 왔다. 그 결과 분출하는 애국주의 여론은 당국에 양날의 칼이다. 1989년 천안문(톈안먼) 사태 이후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의 영향 속에서 초고속 경제성장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신세대가 출현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대비되며 중국의 성취를 극적으로 보여준 베이징 올림픽을 거쳐,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이후 중국의 자신감은 급속도로 커졌다. 많은 중국인들은 공산당이 미국에 밀리지 않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인터넷에는 “미국은 곧 망할 것” “감히 중국을 건드릴 수 없다” 같은 강경한 언사가 넘쳐난다. 당국은 애국주의 여론이 과도하게 끓어올라 국제사회와 충돌할 때는 검열을 통해 통제에 나서지만, 애국주의라는 중요한 충성의 원천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이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애국주의를 강화해 충성을 이끌어내면서, 국제사회와는 충돌이 거듭된다. 2020년 10월23일 중국이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 전쟁’이라 부르는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앞두고, 이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승리로 추앙하는 선전이 한껏 고조됐다. 그 과정에서 중국 네티즌들이 방탄소년단(BTS)의 “한미의 고귀한 희생” 발언을 트집잡아 논란이 벌어졌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참전은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정의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과거 (한국) 전쟁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는 제국주의(미국)와 싸워야 한다”고 선언했다. 항미원조 전쟁 뒤 70년이 흐른 지금의 미-중 신냉전에서도 중국이 결국은 미국에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강조하려는 국내정치용 발언이지만, 민감한 냉전의 역사를 정치화하는 선전 정치는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분노를 고조시켰다.
외부의 비판에 중국은 경제적 힘으로 대응한다. 대규모 구매와 투자, 시장접근권 등 ‘당근 외교’와 함께, 중국의 국익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한 국가에 대한 사정없는 ‘채찍 외교’가 빈번해졌다.
2010년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에게 노벨 평화상을 준 보복으로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한 것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2016년 한국의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허용에 대한 보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8년 12월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가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되자, 중국 당국은 캐나다인 2명을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체포했고 캐나다산 콩, 카놀라, 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2020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해 독립적 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한 이후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 보리, 와인, 랍스터 등에 줄줄이 수입제한 조처를 취했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호주군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학살을 비난한다며, 호주 병사가 아프간 소년의 목에 칼을 들이댄 ‘합성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호주는 미국의 첩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스’의 일원이자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의 한 축이지만, 수출의 거의 40%를 중국에 의존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중국은 호주를 무릎 꿇려 미국이 동맹을 결집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구상에 큰 균열을 내고, 미국의 다른 동맹국에도 ‘너희들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려 했다. 결론은, 중국에 득보다 실이 컸다. 호주 재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섣부른 외교로 너무 큰 손실을 입었다는 불만은 나왔지만, 호주는 중국에 무릎 꿇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거친 외교에 맞서려면 민주국가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과도한 대중국 경제 의존에 대한 경계감도 커졌다.
트럼프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무너뜨리는 자해극을 벌이는 동안 중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스스로 망쳤다. 전세계 130여 국가에 중국은 최대 수출 시장이다. 중국의 경제적 채찍 외교는 분명 즉각적인 효과를 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깊은 반감을 확산시켰다.
올해 당 창건 100주년을 맞는 중국공산당은 미국은 쇠락하고 있고 중국은 14억 인구의 방대한 시장과 상승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건국 100주년인 2049년 이전에 미국을 꺾고 세계 최강대국이 된다는 서사를 강조하고 있다. 초조한 미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국을 견제할 것이고, 어떤 양보를 해도 중국을 꺾으려는 미국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 지도부는 판단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홍콩 국가보안법,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강제수용소, 남중국해에서의 세력 확대, 히말라야에서 벌이는 인도와의 대치 등 국제사회의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는 거침없는 행보로 이어졌다.
중국과 국제사회를 이어주는 ‘공동의 이상’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은 경제적 힘으로 반감을 누르고 미국의 전략에 맞대응하려는 전략에 더욱 집중한다. 지난 12월30일 중국은 7년 동안 협상한 유럽연합(EU)과의 포괄적 투자협정을 서둘러 체결했다. 유럽 기업들이 통신, 금융, 전기차 등 분야에서 중국 시장에 더 쉽고 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유럽과의 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을 놓기 앞서, 중국이 거대 시장을 유인책 삼아 유럽연합을 끌어당기는 포석을 놓았다. 중국은 미국의 동맹인 한국, 일본까지 포함한 14개국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체결했다. 코로나19 재난과 관련해 세계 곳곳에서 중국에 대한 원망이 높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중국은 ‘백신 외교’도 가동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왕후이, 자오팅양(趙汀陽) 같은 학자들은 중국이 중화제국의 조공체제를 긍정적으로 되살려 서구식 근대 국제질서의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오팅양은 <천하체계>에서 서구의 근대적 국제질서는 국가 간 경계성을 기본으로 언제나 자신과 구별되는 적을 분류하고 파괴하려 하지만, 중국의 ‘천하체계’는 모든 국가·민족에 경계를 두지 않기에 진정한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시진핑 시대 외교의 주요 구호인 ‘인류운명공동체’, 유라시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일대일로 정책은 새로운 ‘천하체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것이다. 그 중심은 중국이며 ‘충성’하는 국가에는 경제적 이익이, ‘불충’한 국가에는 보복이 주어지는 ‘21세기 조공질서’이다. 공유할 가치는 희미한데, ‘돈의 힘’으로만 유지되는 ‘인류운명공동체’를 세계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박민희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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