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소소해도 괜찮아 / 노은주·임형남

한겨레 2021. 1. 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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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큰 사건으로 가득하고 그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일상들로 세상은 돌아간다.

처음 읽은 건 <무라카미 라디오> 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별것 없는 자신의 일상에 대해 결론도 없는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픽션이 아니라 마치 작가 본인 일상의 단면인 것처럼 무난히 흘러가는 이야기들은 나에게 일요일 오후의 낮잠 같은 평화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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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노은주·임형남 Ι 가온건축 공동대표

세상은 큰 사건으로 가득하고 그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일상들로 세상은 돌아간다. 그런 일들이 쌓여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아, 물론 이건 우리 같은 소시민의 주관적 관점이다. 가혹한 역병으로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채 1년을 허덕이다 새해를 맞이했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정리하지 못하고 퇴근했던 책상에 다시 앉은 것처럼 어수선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춘수 형님이 책을 냈다길래 얇은 소설책을 하나 주문했다. 친한 선배는 아니고 내가 부르는 애칭인데 성은 촌상(村上)이고 이름이 춘수(春樹)인,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90년대에 하루키의 소설은 무척 인기가 좋았다. 간결하고 쿨한 느낌의 문체와 개인주의적인 서술을 통해, 마치 세기말의 젊은이에게 삶의 방식의 좌표를 찍어주는 듯한 영향력을 지닌 작가였다. 그런데 사실 나는 무언가 유명하다거나 유행하면 일부러 외면하는 이상한 허영이 있어서 그때는 외면했다. 나의 젊음도 90년대를 지나왔지만 그 좌표를 모른 채 잘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읽은 건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별것 없는 자신의 일상에 대해 결론도 없는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가령 크로켓을 얼려둔 냉동고가 고장 나는 바람에 이틀 동안 죽도록 튀겨 먹었다든가 하는 싱거운 생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대충 끝을 낸다. 유명하다는 장편소설은 이상한 설정이나 지나친 허장성세가 어색하고 촌스러운 반면, 허무한 수필이나 동네 다방에 앉아 실없이 농담 늘어놓는 동네 형님처럼 주절거리는 단편소설이 나는 훨씬 좋았다.

이번 소설집에도 별스럽지 않은 일상이 많이 나온다. 비틀스 판을 들고 지나간 소녀를 기억하지만 비틀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남자의 이야기라든가 야구장에 앉아서 맥주 마시는 이야기 등 친숙하고 소소한 일상이 계속 흘러간다. 마치 스웨터 어느 부분에 올라온 보푸라기 같은 것을 예민하게 잡아들고 요리조리 들여다보는 듯한 글이다. 픽션이 아니라 마치 작가 본인 일상의 단면인 것처럼 무난히 흘러가는 이야기들은 나에게 일요일 오후의 낮잠 같은 평화를 줬다.

돌이켜보면 사람의 일생이라는 것이 언제나 장엄하고 거룩하게 흐르지는 않는다. 아니 늘 허접하고 소소하다. 그런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모여서 일생이 되는 것이고 역사가 쌓이는 것이다.

새해에는 소소함에서 행복을 느끼고 거창함보다는 일상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다가오는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 아직도 터널의 끝이 멀어 보이니 지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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