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재난지원금은 선심 쓰듯 주는 '개평'이 아니다 / 김회승
[아침햇발][코로나19 세계 대유행]
김회승 ㅣ 논설위원
코로나 방역으로 영업금지가 연장된 헬스장들이 ‘오픈 시위’를 시작했다. 헬스장 업주 대표가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문을 열자’는 글을 올렸더니 전국에서 500여곳이 참여했다. “과태료를 물리려면 물리라”는 것이다.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헌법소원도 낼 예정이다. 방역 당국의 행정명령에 대놓고 공식적으로 반발한 ‘사태’는 몇몇 교회를 빼곤 처음 있는 일이다.
방역 당국은 업종별 영업 금지·제한의 형평성을 세밀히 따져보겠다고 한다. 과연 거리두기 세부 규정을 정교하게 재조정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피시방 등 앞서 문을 닫은 업주들은 훨씬 더 막막할 게다. 오래전부터 저녁 장사를 사실상 접은 음식점이나 부분 영업이 허용된 태권도 학원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를까. 도저히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몇달 전만 해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영업 손실을 감수하고 저축을 깨고 대출을 내며 버텼다. 그렇게 일상의 복원을 기다린 게 1년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말 착한 편이다. 유럽에선 이동제한과 영업금지 조처가 강화될 때마다 기본권 제한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자영업자와 일용직들이 돌을 던지고 거리를 불태우기도 한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생사의 임계점에 서 있다. 그나마 우리는 오래 버틴 셈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의 경우를 보자. 독일은 3차 유행이 확산한 지난해 12월부터 슈퍼·약국 등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과 학교 문을 닫았다. 눈에 띄는 건, 봉쇄 조처와 동시에 내놓은 과감한 지원 대책이다. 피해 업종에 모두 112억유로(약 15조원)를 투입키로 했다. 인건비·임대료 등 고정비의 최대 90%를 지급하는 규모다. 연방정부 당국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가게 문을 닫아도 고용과 생계가 유지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방역이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까지 세차례 재난지원금을 조성했다. 하지만 한번도 정부가 먼저 준비해 지원에 나선 적은 없다. 그때그때 여론의 압력과 국회 등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지원 계획을 내놨다. 그러니 지원 규모도 대상도 방식도 다 주먹구구다. 코로나 상황은 더 심각해지는데 지원액(직접지원액 기준)은 14조3천억→7조8천억→6조7천억원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정부는 여러 차례 “코로나 극복에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말 그럴까. 민망한 사실이 최근 통계로 확인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한국의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2%로 전망했다. 42개 주요국 중 네번째로 적자 폭이 작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중소국들을 빼면 사실상 1위다. ‘전시에 준하는 재정 투입’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결과다. 방역 성과 덕분에 다른 나라보다 재정 투입을 최소화했다고 자화자찬할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이재명 경기지사가 “어려운 국민들 삶을 돌보지 않고 곳간을 지킨 게 뿌듯하냐’고 일갈했겠나.
다시 독일로 가보자. 독일 정부는 올해 예산 5천억유로(약 667조원) 중 1800억유로(약 240조원)를 국가부채로 조달한다. 지난해와 올해 예산의 40%가 빚이다.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해 2025년까지 국채 조달 계획도 따로 내놨다. 독일은 최근 6년간 신규 대외채무가 전혀 없던 나라다. 부자 나라여서 통 크게 쏘는 걸까. 독일 재무장관은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지원하는 것이 지원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회비용을 계산한 경제적 판단이라는 애기다.
가계와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도 나라 곳간을 우선하는 건, 달리 말하면 경제적 고통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모두 국민이 떠안으며 극복했다. 국가는 한 게 별로 없다. 주요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를 빠르게 국가부채로 이전했다. 국가 리스크가 개인 리스크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꾸로였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가계부채는 확 커졌지만 정부가 떠안지 않았다. 코로나 위기가 지나면 부채 격차는 훨씬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여당 안에서 ‘2차 전국민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온다. 재난지원금은 선심 쓰듯 주는 개평이 아니다. 국민의 희생과 인내에 정당한 보상으로 답해야 한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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