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 '끼'가 되는 날까지..JTBC '싱어게인' [작가 이윤영의 오늘도 메모] (2)

황계식 2021. 1. 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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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글징글’했던 2020년이 가고, 새해가 밝았다. 작년 이맘때쯤이었을까. 미리 세워두었던 새해 계획을 ‘가열차게’ 하나씩 실행하며 내심 뿌듯, 유쾌, 발랄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평생 원수로 남았던 영어 공부도 시작했고, 미루고 미뤄왔던 ‘벽돌책’들도 꺼내 한두권씩 읽었고, 글벗님들과 이것저것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들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많은 계획 중의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했고, 아예 추진하지 못한 것들도 꽤 많다. 

많은 이들은 새해 첫달이나 전해 12월의 후반쯤 새해 계획을 세운다. 오랜 ‘방송국놈들’ 생활로 나는 조금 일찍 새해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다. 하지만 2021년 1월이 시작됐음에도 난 여전히 ‘딱 부러지는’ 새해 계획이 아직 없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새 다이어리에 한두 줄이라도 적으면서 새해를 맞이했었는데, 올해는 그런 ‘가벼운 의식’조차 거행하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1년을 겪어서일까, 새해가 약간 ‘시큰둥’하다. 그렇게 새해 첫 주말을 지내고 보니 약간의 ‘현타’가 왔다. 서둘러 그동안 눈여겨봤던 다이어리를 주문하고, 이것저것 1월의 스케줄을 정리하다 문득 올해는 거창한 계획 대신 그냥 작년에 하던 것들을 이어서 ‘꾸준하게 해보기’로 작정해본다. 

JTBC에서 방영하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 가수를 했거나 음반을 낸 ‘족적’이 있는, 이른바 ‘가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새롭게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신인 발굴에 집중했다면 이 프로는 재야의 숨은 가수를 찾거나 한때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를 불렀지만 어느날 소리 소문 없이 잊힌 가수 혹은 노래는 한 번에 들으면 알지만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정작 알 길 없는, ‘얼굴 없는 가수’들의 자기 이름 알리기가 콘셉트이다. 
 
지난 방송에서 한때 아이돌로 활동했던 출연자의 도전을 보면서 전 출연진이 극찬의 말을 내뱉었다. 그는 편곡부터 노래, 춤에 이르기까지 혼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다양한 역할을 해냈다. 한눈에 봐도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보이는 무대였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MC인 가수 이승기는 그에게 점수를 떠나서 꾸준함이 ‘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였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살다 보면 어떤 분야에 정말 기가 막힌 ‘재능’과 ‘끼’를 가진 이를 만날 때가 있다. 그가 가진 재능과 끼에 부러움을 발사하다가 나에게는 왜 저런 능력이 없을까, 자책하게 된다. 자책의 끝에는 신을 원망하고, 조상을 탓하며, 부모를 책망한다. 내 몸 안에 흐르는 DNA 하나하나까지 미워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은 내가 원망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타고난 재능과 끼는 분명히 다르다. 그것을 충분히 갖고 태어난 이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내 안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를 아주 잠시만 부러워하고, 그와 내가 다름을 빨리 인정하자. 그리고 내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자. 

재능과 끼를 이기는 것은 ‘꾸준함’이다. 싱어게인의 출연자가 작은 체구로 큰 무대를 혼자서 꽉 채웠듯이 아주 특별한 재능이 없다면 일단은 꾸준함으로 승부를 겨뤄보자. 매일 조금씩 하는 꾸준함은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누구의 도움이나 배경, 타고난 재능이 없이도 가능한 재능이다. 

글쓰기 수업을 하다보면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포기의 절대적인 이유는 ‘꾸준함’을 놓치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으로 글을 쓰는 이들도 한순간 꾸준함을 잃게 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2021년 내 유전자에는 아무리 뒤져봐도 없을 재능을 더 이상 찾지 말고, 일단 꾸준함으로 승부해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그 꾸준함이 끼가 되고, 재능이 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이윤영 작가(‘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저자)
사진=JTBC ‘싱어게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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