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구치소 집단감염도 중대재해 처벌대상"이라는 야당 주장 따져보니..

노현웅 2021. 1. 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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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선 서울 동부구치소 사동 창문 앞으로 지난해 12월29일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누적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선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국민의힘이 국가 책임론을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들은 여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취지에 따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동부구치소 사태를 계기로 법무부 교정당국에서 얼마나 비인권적인 행태가 자행됐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늑장 부실 방역으로 동부구치소에서만 전체 수용자의 43%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며 “첫 확진자 발생까지 법무부는 재소자들에게 마스크조차 지급하지 않았고, 지난 9월에는 한 재소자가 자비로라도 마스크를 구매하게 해달라는 진정마저 기각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리를 차용해 교정시설 운영·감독 책임자인 추 장관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금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인명사고에 책임 있는 책임자를 처벌하는 법 취지를 살펴보면, 이번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에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며 “문 대통령은 법무부의 집단감염 은폐와 늑장 대응에 대해서 사과하고, 추 장관을 비롯한 관련 책임자들은 분명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미 사망자가 2명 발생한 마당에 사태를 방치해 온 추 장관은 직무유기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동부구치소 감염사태는 ‘중대시민재해’ 분류 가능성

국회가 논의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살펴보면, 주 원내대표의 이날 발언이 무리한 정치적 수사 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시민재해’도 중대재해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현재 입법 논의의 바탕이 되는 정부 수정안은 ‘중대시민재해’로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시설의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경우” 등을 규정하고 있다. 동부구치소와 같은 교정시설은 수정안 제2조 4호 가목에 따라 공중이용시설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미 2명의 재소자가 숨진 동부구치소 사태 역시 중대시민재해로 판단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그렇다면 교정 당국을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은 이 법이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하게 된다.

그렇다고 추 장관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이후 처벌 대상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먼저 추 장관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으로서 안전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법 적용 대상이 된다. 더구나 수정안은 공무원의 형사 책임이 무제한 확장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형법상 직무유기 혐의가 인정될 경우에만 이 법을 적용한다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처벌 범위를 좁히고 있다. 무엇보다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부칙 규정 탓에, 현재 동부구치소 사태가 법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날 주 원내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언급하며 에둘러 책임을 추궁한 것은 이런 법 적용의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노동계 “국민의힘, 중대재해법을 정쟁화 말라” 일침

다만, 야당의 이런 주장 자체가 산업 현장의 안전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논의의 본질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법 논의 과정에 밝은 한 국회 관계자는 “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중대시민재해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도 “다만 한 해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망자가 2400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무사히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줄이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본질인데, 정쟁을 위한 수단으로 법안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도 “국민의힘은 관련된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해당 법안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산업재해를 방지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자는 입법 취지에 따라 법안 논의에 적극 임하는 것이 약자와 동행한다는 국민의힘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중대재해법과 무관하게 법무부는 도덕적·법적 책임 져야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와 무관하게 법무부 책임자 등이 교정시설 집단감염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재소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법무부 교정 당국의 의무를 생각해 보면, 법무부가 이번 사태에 대한 도의적·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며 “더구나 마스크 보급, 확진자 격리 등 최소한의 방역 대책조차 등한시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짚었다. 국민의힘도 당 차원에서 동부구치소 집단감염과 관련한 피해 상황을 접수하고, 국가 상대 소송 등 법률적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노현웅 노지원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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