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칼럼]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노동'
하종강 ㅣ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학기마다 종강 수업 시간에는 장기투쟁을 해온 사람들을 초청해 이야기 마당으로 꾸민다. 조금이라도 위로하자는 뜻으로 민중가요 가수들을 초청해 공연을 곁들일 때도 있어서 겉모습만으로는 풍성한 행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월호 희생자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콜텍·유성기업·동양시멘트·재능교육·한국쓰리엠·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다녀갔다.
이번 학기에는 안산에서 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인 사업장의 노동조합 분회장과 평택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을 해온 노동조합 지회장을 초청했다. 두 회사 모두 우리 사회 중소기업의 전형과 같은 사업장이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진행에 필요한 최소 인원만 학교에 모여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상투적으로 으레 물어보는 질문 두어개만 준비했고 나머지 순서는 사회자 재량에 맡겼다. “노동조합 간부를 맡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첫번째 질문에 이어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어요?”라는 두번째 질문을 했을 때, 한 사람이 먼저 답했다.
“꿈이 없었다기보다… 꿈을 꿀 수가 없었어요. 11살 때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공부를 하고 싶다거나 운동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어요….”
또 한 사람이 답했다.
“홀어머니가 키워주셨는데, 전세를 살면서 확정일자 받는 거를 몰랐어요. 전세금을 날리게 된 거죠.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어머니가 법원에 가서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렸는데, 법원 직원이 한자로 가득 써진 문서 양식을 주더래요. 어머니가 눈앞이 깜깜해지셔서….”
그걸 질문이라고 준비했던 우리가 잘못했다는 생각으로 주최 측은 모두 고개를 숙였고 강의실 귀퉁이에서 잔일을 거들고 있던 나는 40여년 전에 만났던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얼굴이 겹치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 긴 세월이 지나도록 어떻게 노동자의 삶은 이다지도 달라지지 않을 수가 있는가?
사회를 맡았던 사람은 나중에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나 그도 자신의 회사에서 ‘최후에 남은 조합원 2인’ 중 한 사람이고 엄동설한에 투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1인시위를 밥 먹듯 하고 있는 노동조합 위원장이다.
새해를 맞으며 듣는 노동자들의 소식은 예년에 없이 어둡다. 국회 안팎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이 이어지던 지난 3일, 울산 현대자동차에서는 원청회사 중역이 방문하기 전 청소작업에 투입됐던 사내하청 노동자가 금속 압착기에 눌려 끝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작업은 고위험군 작업으로 설비를 멈추고 청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생산 차질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전원을 유지한 채 청소작업을 진행해왔다는 것이 하청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출입문을 통해 정상적으로 출입한 경우 설비가 자동으로 멈추게 되므로 마치 고인이 임의로 작업 원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난 것처럼 몰아가는 시각도 있지만, 해당 공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지난해 말,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맞아 많은 언론 매체들이 전태일 열사에 관한 내용을 다뤘고 나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전태일 열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50년 전 한국 노동자들은 세계 최장 시간 노동을 했고 노동재해로 가장 많이 사망하는 노동자들이었는데, 50년 세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이건 뭔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마땅한 일이다. 영국과 비교할 때 한국 노동재해 사망률은 25배나 높다(2015년 기준). 그 ‘절박함’을 어떻게 ‘조급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가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라고 한다. 그 이유를 황상기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노래에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런 가사가 나오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 얼굴을 다 보고, 씻고, 옷 입고, 먹고… 할 수 있으면 행복한 가정이거든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어.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는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메던 황상기씨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난다. ‘경제규모 세계 12위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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