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이란 '한국 선박' 나포, 바이든 행정부 앞둔 전략적 도발일까?

길윤형 2021. 1. 5. 14: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 모습. 오른쪽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타고 온 고속정이다. 사진은 나포 당시 CCTV에 찍힌 모습이다. 연합뉴스

이란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무릅쓰고 우라늄 농축도를 20%까지 올리는 작업을 시작한 당일 한국 국적 화학물질 운반선을 나포하는 ‘이례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우라늄 농축’과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30%(한국 원유 물동량의 약 70%)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위협’이라는 두 갈래의 ‘대미 도발’에 나선 모양새다.

이란 정부는 한국 선박 나포 사건이 벌어진 당일인 4일 오후에 해당 선박이 “해양 오염을 일으켰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채 함구하고 있다. 사이드 카팁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밤 누리집에 올린 성명에서 “지방 당국의 초기 보고에 따르면, 이번 이슈는 완전히 기술적인 것이다. 선박이 바다를 오염시켰기 때문에 해변으로 유도돼 (이란 당국의) 사법 관할 아래 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란 정부는 바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이런 범죄에 민감하다. 따라서 이번 사건도 법령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은 5일 오후 1시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불러 이번 사태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란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온 한국의 선박을 나포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분명히 확인되지 않는다. 이란 정부의 공식 설명처럼 한국 선박이 해양 오염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이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에선 한국에서 동결돼 있는 약 70억 달러(7조6천억원) 규모의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을 둘러싼 갈등을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꼽는다. 이란 정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7월 “원유 대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에 사태 해결을 강력히 요구했다. 한국은 2010년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 대금을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의 계좌로 입금하고, 이란에 비제재 품목을 수출하는 기업은 그 대금을 계좌에서 지급받는 방식으로 교역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2019년 9월 이란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며 이란과 교역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란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데도 정부가 의미 있는 대응을 하지 않자 선박 나포로 압박에 나섰다는 것이다. 앞서 외교부는 이런 불만을 달래기 위해 최종건 제1차관의 이란 방문을 추진해 왔다.

이번 사태를 보는 국제 사회의 반응은 심각하기만 하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과 이란의 ‘살벌한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 가운데 발생한 이번 사건을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나포 하루 전날인 3일은 미국이 드론 공격을 통해 이란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또 40여일 전인 지난해 11월27일엔 이란 핵 과학자 모흐센 파크리자데가 이스라엘 모사드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연히 이란 내에선 ‘보복’을 요구하는 격렬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정서를 받아들여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12월 중순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한 보복을 실행하겠다”고 밝혔고, 며칠 뒤인 12월20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국 대사관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20발의 로켓탄 공격이 이뤄졌다. 그러자 미국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략 폭격기 B-52를 페르시아만에 세 번이나 띄워 이란을 위협했다. 이어 원자력추진 잠수함 조지아, 항공모함 니미츠를 파견하는 등 무력 시위를 이어갔다.

사이드 카팁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

국제 사회가 더 우려하는 것은 한국 선박이 나포된 날, 이란 중부 포르도의 핵 시설에서 20% 농축도(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이상이다)의 우라늄 생산을 재개했다는 점이다. 이란은 지난 2015년 8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과 고농축 우라늄과 무기급 플루토늄을 15년간 생산하지 않고, 우라늄의 농축률은 3.67%, 보유량도 300㎏로 제한하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했다. 이란은 그동안 이 협정의 틀을 깨지 않으려 자제했지만, 이번 행동으로 선을 크게 넘었다. 즉, 솔레이마니 사망 1주년과 바이든 행정부 취임을 계기로 농축도 20% 농축 우라늄 생산과 호르무즈 해협 안전 위협이라는 강력한 ‘대미 도발’에 나선 것이다.

이란의 대미 도발이 취임 후 “이란 핵협정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온 바이든 당선자와의 향후 협상에서 우위를 얻겠다는 ‘전략적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목적 달성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미국에서도 ‘대이란 강경론’이 분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일치 사설에서 미국이 “단순히 협정에 복귀하는 것은 아무 것도 못 얻고 매우 중요한 양보를 하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를 유지하고 유럽도 이에 참여하도록 설득한다면 이란에게 양보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핵협정에 복귀하지 말고,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최대의 압박’ 정책을 이어가라는 요구다.

아직까지 이란의 정확한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만큼 선박 나포 사태가 언제쯤 풀릴지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란은 한국인 석방 등 향후 사건 처리 방침과 관련해 “법령에 따라 처리될 것”이란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바로가기 : 한국선박 억류…청해부대 호르무즈 해협 도착 ‘임무시작’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977292.html

▶바로가기 : 미 정부, 이란에 “한국 유조선 억류 즉시해제 요구”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77283.html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