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코로나 1년, 너무나 한국적인 명과 암 / 신진욱
[세상읽기]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20년은 ‘코로나 시대’가 바꿔놓을 우리 삶과 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측으로 시작됐다. 문명사적 위기, 거대한 단절, 혼돈과 불확실성, 그리고 대전환의 비전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제 2021년을 시작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와 씨름했던 지난 1년이 어땠는지, 한국의 대응 방식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새해의 실천 과제가 무엇인지 중간 고찰이 필요하다.
한국에선 코로나 감염률만으로 ‘서구 선진국도 별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서구 사회의 여러 약점이 드러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는 감염뿐 아니라 파산, 실직, 빈곤, 고립 등을 포함하는 다중 위험 상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역, 경제, 고용, 소득, 분배 등 여러 면에서 입체적으로 코로나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우선 방역 측면에서 결과만 놓고 보면 한국이 성공적인 사례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지의 국가별 코로나 대응 분석에서 각국의 조건을 고려한 방역 역량을 보면 얘기가 좀 다르다. 이 조사는 각국 노인인구 비율, 국제교류 빈도 등 조건을 고려하여 코로나 검사 수, 사망자 수, 의료 대응을 측정했다. 그 결과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등이 가장 우수하고, 한국은 ‘괜찮은’ 수준이다.
고용 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 전망에 따르면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은 영미권, 남유럽, 동유럽 나라들이다. 그에 반해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서유럽 나라들이 낮은 편이다. 한국은 실업률이 비교적 낮지만, 실업률로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급증했다.
소득 면에서도 서구 복지국가의 역량이 두드러진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유로파운드의 7월 서베이 결과를 보면 팬데믹 이후 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자가 40% 이상인 나라는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남·동유럽 나라들이고, 그 비율이 20% 미만인 나라는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등 서·북유럽 나라들이었다. 한국은 같은 시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로 32% 정도다.
이렇게 코로나의 현실을 다면체로 보면 한국의 현황이 달리 보인다. 한국 방역모델이 우수한지, 경제를 선방했는지가 스토리의 전부가 아니다. 더 큰 틀에서 이 위기가 우리의 사고와 정책에 근본적 성찰과 전환의 계기가 되었는지, 아니면 낡은 경로가 지속된 것에 불과한지가 본질적인 질문이다.
한국 사회는 언제나 화려한 총량지표와 평균지표에 눈이 멀어 끔찍한 분배지표를 간과해왔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수, 경제성장률, 수출증가율, 국민총소득 모두 최우수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숫자’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 우리 정치는 실직, 과로, 빈곤, 자살, 산업재해로 쓰러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방관하고 있다.
정부 대응도 그러하다. 혁신과 개혁의 수사가 범람했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죽은 줄 알았던 유산이 부활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 정부는 강력한 행정력으로 감염을 억제하고 시장의 경제활동을 정상 유지시키는 데 집중했다. ‘한국판 뉴딜’ 계획은 신산업 육성과 아르앤디(R&D) 지원 등으로 한국 기업과 과학기술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중심 목표로 삼았다.
이런 대응은 성장 중심, 기업 우선, 수출 주도, 엘리트 육성 중심의 개념이라는 점에서 오래된 발전국가의 전통을 계승한다. 다만 정치적 측면에서 권위주의를 민주주의로, 군사안보를 보건안전으로, 발전국가를 투자국가로 변형했다. 반면 소득주도 성장, 노동존중 사회, 포용복지국가라는 문재인 정부 초기의 핵심 기조는, 여전히 남아 있되 그 위상이 약화됐다.
2020년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안타깝게도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명암이 다시금 또렷이 나타났다. 세계 최고의 방역, 최고의 성장, 최고의 수출, 최고의 국가자부심이 빛나는, 그러나 세계 최악의 빈부 격차, 최고의 자살률, 최저의 복지 지출, 최장의 노동시간, 최다의 산재사망이, 마치 버려진 잿더미처럼 널브러져 있는 한국 사회의 위선적 풍경 말이다.
2021년 한국 사회가 코로나를 벗어나는 과정은 이런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하는 치유와 재생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끝없이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고자 노력했고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그 누군가가 도처에 있음에서 희망의 근거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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