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탈북하다 잡힌 딸 그리다..코로나가 앗아간 납북어부의 꿈
"삯바느질로 부모 봉양한 우리 딸 살아만 있어다오"
13년간 딸 생각만 했는데..코로나확진 9일만에 사망
1975년 납북된 어선 천왕호 선원으로, 2008년 북한을 탈출한 윤종수(79)씨가 지난 4일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했다. 13년 전 윤씨의 탈북을 도운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5일 “윤씨는 탈북 과정에서 붙잡힌 외동딸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낸 날이 없다”며 “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윤씨는 1975년 8월 동해상에서 조업 도중 납북된 천왕호 선원 33명 중 한 명이다. 납북 이듬해 평안남도 개천군의 농기계작업장에 배치돼 30년 가까이 일했다. 재일교포 출신 아내를 만나 슬하에 딸을 하나 뒀으나, 2008년 5월 동반 탈북 과정에서 북한 당국에 붙잡혔다. 홀로 두만강을 건넌 윤씨는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보호를 받다 이듬해 2월 한국에 입국했다. 천왕호 납북 선원 가운데 4번째 탈북이었고, 전후 납북자 500여명 가운데 8번째 귀환이었다.
윤씨는 한국 귀환 이후 딸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고 한다. 여동생 갑순(67)씨는 “오빠는 ‘삯바느질로 부모를 봉양한 효심 지극한 우리 딸을 꼭 데려와야 한다’ ‘살아만 있어다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했다. 윤씨는 딸을 구하기 위해 몇차례 시도를 해봤지만 모두 허사였고 “수용소로 끌려간 것 같다”는 불길한 소식만 들려왔다. 혹시라도 딸에게 해가 될까 봐 공개적인 구명운동은 하지 않았다. 갑순씨는 “딸을 만날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며 식사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오빠였지만, 얼굴엔 항상 수심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지난달 26일 갑작스런 호흡곤란과 고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별다른 지병이 없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 4일 오전 숨을 거뒀다. 갑순씨는 “오빠는 병실에서 치료받고 난 격리되는 바람에 임종할 때까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며 “남길 말씀이 많았을 텐데 이렇게 황망히 가셔서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갑순씨는 “오빠는 북한의 납치로 33년간 자유를 잃었고, 여기 와서도 딸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을 거란 걱정에 웃음을 잃었다”며 “그래도 언젠가 딸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한가닥 기대를 갖고 살아왔는데 코로나가 그것마저 앗아갔다. 더 오래 사실 수 있었는데…”라고 했다. 최 대표는 “윤씨는 꿈에 그리던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딸을 사지에 두고왔다는 자책감에 거의 웃지 못했다”며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며 생사라도 알고 싶어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유족들은 오는 9일 모처에 모여 윤씨를 추모하기로 했다. 윤씨는 생전에 멀리 북한 땅이 보이는 접경지역에 작은 땅을 마련해두고 종종 들러 남북통일과 딸의 무사기원을 기도했다고 한다. 갑순씨는 “화장한 오빠의 유골을 모시려고 한다”며 “이렇게 떠나가셨지만 오빠의 꿈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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