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언어탐방] 아이디어: 오랫동안 생소했던 언어
김용석 ㅣ 철학자
철학 술어와 일상용어 사이에는 적지 않은 교류가 있다. 그 과정에서 언어는 변이를 겪으며 진화한다. 이 진화의 뿌리와 줄기를 살펴보는 일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자 새로운 생각의 화두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
외래어 가운데서 ‘아이디어’(Idea)만큼 우리 일상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도 드물 것 같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정의하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직감할 정도다. 사전에서는 아이디어를 ‘어떤 일에 대한 구상’이라고 정의한다. 밋밋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 유의어로 ‘영감’을 들기도 한다. 영감이란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이라고 정의된다. 그렇다면 아이디어는 단순한 구상이라기보다 영감을 이미 포함한다. 창의성 및 기발함과도 밀접하다. 따라서 ‘보통 이상’의 일임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우리 일상에서 아이디어라는 말의 사용 빈도가 높다는 건 무엇을 말할까. 우리가 보통 이상의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와우! 그렇다면 이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이디어 때문에 고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 말에 즉각 동감할 것이다. 아이디어와 연관해 자주 쓰는 표현이 ‘머리를 짜낸다’라는 것도 잘 알고 있으리라. 아이디어는 뭔가 ‘으쓱’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끄응’ 고민거리를 잔뜩 가져다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는 원인이 있음 직하다. 아이디어라는 말이 골치 아픈 철학 술어에서 유래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 말의 그리스어 발음은 ‘이데아’이다. 플라톤이 개발한 ‘이데아 이론’은 서구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 설명하는 것은 큰 위험부담을 지는 일이다.
현대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구의 철학적 전통은 플라톤 저작에 대한 일련의 각주 달기”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한 말은 잘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의 속뜻이다. 화이트헤드가 의도한 것은 학자들이 플라톤 저작에서 끄집어낸 “사상의 체계적 도식”들이 아니었다. 그는 “플라톤의 저작 도처에 산재해 있는 일반적 아이디어들의 풍부함”을 말하고 싶었다. 플라톤은 “위대한 문명화의 시기에 폭넓은 경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의 시대 때까지만 해도 “과도한 체계화로 경직되지 않았던” 지적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것들이 그의 저작을 지적 영감과 “제안의 무진장한 보고”가 되게 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플라톤 철학이 일부 선입견과 달리 대단한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의 사상을 대중적 소통을 위해 융통성 있게 해석하는 것 또한 하늘의 플라톤도 동의하리라. 플라톤은 사람들이 일상에서조차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태도를 유심히 보았다. 사람들은 서로 완벽하게 똑같은 것을 찾을 수 없음에도 그것을 찾으려고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엄밀한 객관적 지식을 추구한다. 당시 중요한 학문이었던 기하학에서는 완벽한 도형을 추구한다. 완벽한 원은 그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이런 도형은 유한한 인간이 취할 수 없는 무한한 초월수를 품고 있다. 파이(π=3.14159…)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완벽한 대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추론적으로 그것이 어딘가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세계와 다른 세계에 과학과 객관적 지식의 대상이 되는 무엇인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이 대상을 이데아라고 불렀다. 완벽한 구체로서 공의 이데아는 일상적 경험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모든 공들의 ‘본’이자 ‘원형’이다. 플라톤의 이론은 한겨울 화롯가에 모여 앉아 듣는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우리는 이만 오늘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 생산’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00년 동안 이데아가 아이디어로 진화하면서 많은 변이가 있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디어의 개발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일의 본과 원형을 찾는 일에 비견되는 아이디어 창출에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피라이터 같은 전문인들도 사용하는 아이디어의 시각적 상징은 ‘반짝 불이 들어온 백열전구’이다. 하지만 이는 아이디어 창출 과정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하려면 발전을 해서 전기를 공급해야 하고 여러 가지 전선을 연결해야 하며 상황에 맞게 변전해야 한다. 바로 이 과정이 아이디어 창출 과정과 유사함을 곰곰 새겨 보라.
아이디어 스트레스는 창의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과 밀접하다. 오늘날 우리는 창의성의 가치에 익숙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그것은 오랫동안 생소한 것이었다. 창의성은 인류 문화사의 막내 동생쯤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창조라는 말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었다. 예술가의 행위는 자연을 모방하여 표현한다는 ‘미메시스’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중세에 이르러 창조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은 ‘무(無)로부터’ 창조하는 신의 행위를 가리킬 뿐이었다.
근대의 여명기에 창의성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는 자신의 행위가 자연을 모방하기보다 상상력을 실현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혁명이 있었던 17~18세기에 창의성과 상상력은 더욱 깊이 연결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예술과 창조 행위를 동일시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움’ 또는 ‘색다름’이 창의성을 정의하는 기본 요소가 되었다. 20세기에는 창조의 개념과 실천이 인간문화 전반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경제·경영 분야에서는 그것이 혁신과 함께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이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에서 창의력이 중요해지는 ‘범창조주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의 역사에서 다른 아이디어들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언어를 살펴보는 것 자체가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언어는 반짝이는 영혼의 양식이다. 또한 아이디어가 생산과 소비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때도 있었고 창의성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모든 변화들, 곧 기후변화, 전염병 확산, 경제성장의 한계 등은 이제 삶의 절제와 균형을 설득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촉구하고 있다. 계속 만들어서 ‘쓰고 버리라’고 설득하는 아이디어보다 ‘알맞게 쓰고 살펴서 버리라’고 설득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문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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