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모아서 결혼하라? 아니, 우린 1인가구 '비코노미'!

김미향 2021. 1. 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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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이코노미' 여성 7명
재테크 책 집필 모금하자
2873명 후원 7860만원 모여
비컴트루 제공

“경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재테크 책들도 많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모아둔) 밑천이 없으니 포기하게 된다. 전문가와 대중 사이에 계단이 되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비코노미 팀장 헬스매니아)

24살부터 35살까지 비혼을 마음 먹은 직장여성 7명이 여성 1인 가구의 경제적 자립에 관한 책을 쓰자고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11월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26일만에 전국에서 2873명의 후원자들이 지갑을 열었다. 그렇게 7860만원을 모았다.

싱글에겐 결혼자금 모으라 하고, 결혼하면 3~4인 가구를 위한 내집 마련을 조언하기 바쁜 경제 콘텐츠들. 그 사이에서 혼자 당당하게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하는 책에 이토록 목말랐을까.

광주·전라 지역의 비혼여성 공동체 ‘비컴트루’는 경제에 관심있는 회원 7명을 모아 재테크 서적 <비(B)코노미-비혼 여성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제 지침서>를 지난달 말 냈다. 이 책은 경제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20대 네 명과 30대 세 명이 자신의 경험담과 지역사회 경제정보를 모아 썼다. 란(이하 필명), 셩, 하건, 자춘, 배리, 이를테면, 헬스매니아가 그 주인공이다. 6개월 간 집필한 440쪽의 책은 지난해 12월21일 후원자들에게 전달됐다.

뜨거운 호응을 예상한 건 아니었다. 처음엔 모금액 200만원을 목표로 했다. 책출간 프로젝트 팀장인 헬스매니아(31)는 “한 대형 여성 커뮤니티에 책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적자는 안 나겠구나 했는데, 한창 사유리씨가 (비혼인데) 아기 낳은 것이 화제가 되면서 비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책도 주목 받았다”고 전했다.

광주·전라 기반의 지은이들이 쓴 책은 전국 곳곳에서 팔렸다. “택배 발송을 위해 신청자 주소를 봤는데 강원부터 제주까지 다양했다. 전국의 비혼들이 알음알음 구매해주셨구나, 감사하다, 생각했다.”(헬스매니아) 모금플랫폼 텀블벅 페이지의 방문자 성비를 보면 여성과 남성이 6대 4로 거의 반반이었다. 이 페이지를 찾은 연령대는 25~34살이 가장 많았고 18~24살, 35~44살 순이었다.

비혼 재테크 책 모금하자 7860만원 모여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재테크 서적이 왜 필요할까.

이 책에서 ‘자산관리,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편을 쓴 지은이 ‘이를테면’은 이렇게 말한다. “내 미래엔 부모님의 용돈도, 같이 벌어 살아갈 남편도 없다. 내 미래는 온전히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 위기감과 함께 능동적 돈 관리의 필요성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지금껏 결혼이 기본값인 시대였기 때문에 생애주기별로 만나는 각종 경제 관련 정보에 관한 비혼들의 경험담은 더욱 소중하다.

이 책은 비혼으로 살면서 필요한 경제 정보를 ①취업 전 시기(대학생~취준생) ②사회 초년기 ③자산 형성기로 나눠 정리했다.

취업 전 시기엔 현명한 소비와 절약, 뚜렷한 목표를 다룬다.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취업 이후 사회초년기에는 통장 나누기와 지출 통제, 연말정산과 절세, 예·적금과 보험, 주택청약 가입, 카드 사용, 내가 대상자가 되는 정부지원사업 등을 담았다. 본격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자산형성기에는 대출과 자동차 구입, 내집 마련, 연금 등에 대한 지식을 담았다.

지난해 9월 비컴트루가 광주여성가족재단 북카페에서 연 <비상: 비혼여성들의 주거상상> 워크숍의 모습. 비컴트루 제공

최근 경제 콘텐츠가 봇물을 이루는데, 이 책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비코노미 집필진은 “자산관리에 막 관심 갖고 경제 관련 유튜브, 팟캐스트, 재테크 카페를 둘러보면 나를 위한 정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예를 들면, 부동산 팟캐스트에서 치솟는 집값을 다뤄도 수도권 이야기뿐이다.

비코노미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사는 여성을 위한 경제 콘텐츠다. 헬스매니아는 “지방에서 비혼 여성 공동체를 운영하다보면 지방의 비혼 여성 삶이 얼마나 힘든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지방 여성들의 삶을 고려한 경제 담론과 컨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이 책은 사진, 참고자료 모두 광주광역시와 전라도 지역 중심으로 했다”고 말했다.

비컴트루는 독서모임을 하다 만난 이들이 모여 2019년 9월부터 꾸린 지역 커뮤니티다. 점점 성장해 지난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경제서적 발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난해 9월과 11월 ‘비상:비혼여성들의 주거상상’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지난달엔 광주여성가족재단 청년여성 활동분야 표창장도 받았다.

이들은 지역 기반의 비혼 공동체를 꾸리며 서로 뜨거운 연대감을 확인할 때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헬스 매니아는 “대외적 결과보다 회원 간에 연대감 느낄 때가 좋았다.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 힘들어하는 회원이 있었는데, 도울 방안을 찾아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 간 갈등으로 주거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회원이 있었는데 그 때 다른 회원들이 우리 집에서 쉬었다 가라고 하기도 했다. 집 구할 때 같이 보러 가주고…, 그런 품앗이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비컴트루 제공

“지역 비혼 공동체 필요한 이유는…”

지역에서 비혼의 삶을 고수하기 어려운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헬스매니아는 “지방에선 20대 중반만 되어도 결혼에 대한 질문을 듣게 된다. 비혼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나만 이상한가? 의문을 갖게 되고 감정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경제적 자립도 수도권보다 어렵다. “수도권이 아니면 일자리의 종류가 한정돼 있고 여성은 채용, 급여 등 여러 부문에서 불리하다”고 그는 전했다.

1인 여성 가구가 많아졌지만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게 여전히 쉬운 결정은 아니다. 헬스매니아는 “요즘 비혼이라고 누가 대놓고 비난하진 않지만 지역에서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여건이 부족해 결혼 외에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결혼과 육아를 선택한 또래들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택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고 말했다.

비컴트루의 온라인 커뮤니티 가입자수는 300여명이다. 이들은 모두 비혼의 삶을 선택한 여성들이다. 비컴트루의 커뮤니티 규칙 중엔 ‘쿠션어 사용 금지’가 있다. 완곡하고 부드럽게 말하기 위해 대화 중간에 ‘ㅋㅋ’나 ‘ㅎㅎ’, 이모티콘 등을 굳이 섞어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말이 행동을 만든다고 한다. (비혼 여성들이) 늘 누군가의 밑에 있는 사람처럼, 을처럼 말하기 보다 좀 더 당당한 언어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헬스매니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7명 집필자들이 한겨레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헬스매니아

올 한 해 여성 실직자만 1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힘든 한 해 잘 버텨준 여성들이 고맙다.

@배리

모든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돈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경제가 일상이 된다면 여성의 삶의 질은 높아질 거다.

@란

비혼 여성분들이 자기 명의의 차나 집을 구매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누구의 도움 없이도 든든하게 홀로 버틸 수 있는 맷집을 다졌으면 좋겠다.

@셩

저는 많은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의 경제적 성공을 보고 좋아했으면 한다. 여성들이 경제적 부분에서 많이 얼굴을 비췄으면 좋겠다.

@하건

혼자서 나를 책임지기 위해 경제적 지식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혼자 하기 어려우니 다른 사람과 함께 해내가면 좋겠다.

@이를테면

비혼 여성들이 경제에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재테크의 고수가 된 분들도 모두 처음은 있었다.

@자춘

저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제와 친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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