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미는 모든 이가 '슈퍼히어로 안은영'이다

한겨레 2021. 1. 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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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김준혁의 의학과 서사 (41)
2021년 한국의 슈퍼히어로 '보건교사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의 한 장면. 넷플릭스

그다지 단정하지 않은 차림의 보건교사는 가운 안에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꽂고 있다. 대형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병원 사직 후 편하게 지내려고 학교로 자리를 옮겼지만, 적절한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필이면, 고른 학교가 사연이 있는 학교였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보건교사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내뿜는 엑토플라즘(영적 에너지가 물질적 형태를 띤 것)을 직접 보고 베어 넘길 수 있는 퇴마사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전반적인 도서 판매량이 상승했다. 여기서 주목받은 작가 중 한 사람이 정세랑 작가다. 2012년작 ‘지구에서 한아뿐’은 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다가 절판 후 중고가가 엄청나게 오르자, 2019년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2015년작 ‘보건교사 안은영’은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을 통해 넷플릭스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대학병원을 무대로 해 50명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2016년작 ‘피프티 피플’도 작가의 유명세를 업고 널리 읽혔다.

이 가운데 ‘보건교사 안은영’을 다시 살펴보려 한다. 그저 쉬고 싶은 교사일 뿐인 그에게 사고는 계속 벌어진다. 단,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산 사람만이 아니다. 죽은 사람도, 이들 모두가 남긴 자취도 사고를 일으킨다. 그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모습에서 2020년대 한국의 슈퍼히어로를 본다.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사람들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는 당시 사회의 이상(ideal)을 구현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의 조건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60년대에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파이더맨은 일상에선 생활고에 시달리는 지극히 평범한 10대인데, 이 모습에 미국 청소년들은 자신을 투영했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었다. 21세기, 마블 영화의 앞길을 깔았던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은 아이티 산업의 최첨단을 달리지만 신제국주의의 면모를 보인다며 비난받던 미국의 모습을 초거대 아이티 기업의 주인 토니 스타크에게 덧씌웠다. 아이언맨으로 미국은 9·11을 문화적으로 다시 정의해 냈고, 그들의 기술적 지배력을 세계 구원의 서사로 바꿔냈다. ‘캡틴 아메리카’가 이후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등장해서 주연 또는 아이언맨의 상대역을 맡게 된 것은, 그저 새로운 등장인물이 필요해서일 뿐만 아니라 미국 전통의 가치를 새로이 선보이고자 했던 시도로 읽힌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었다. 드라마 판본은 영상미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이야기가 조금 산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출처: 넷플릭스

이상을 구현하는 한국의 슈퍼히어로는?

그렇다면, 한국에는 어떤 슈퍼히어로가 있는가? 조선 의적 홍길동 이후로 우리가 슈퍼히어로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70년대를 호령한 ‘로보트 태권브이’가 있지만, 태권브이 조종사인 훈이와 영희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들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진 못했고, 그저 태권브이라는 로봇의 크기와 힘이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 보건교사 안은영은 우리와 같은 것을 소망하는 평범함을 지녔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도 같이 갖고 있다. 그의 피로함, 또는 기진맥진함에 우리는 너무도 빠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슬픔을 비춰본다. 그가 해결해 내는 문제는,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으나 어떻게 해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렇다면, 안은영을 슈퍼히어로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2021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한 해 내내 감염병에 시달렸다. 감염병은 당연히 바이러스의 문제이고 면역의 문제이며, 따라서 생물학과 의학의 문제다. 더하여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기억 또는 역사다. 선조 또는 전통과의 연결은 단절되었고, 그 사이를 완전히 끊어버리고자 했던 일제는 강점기 기간 아린 상흔을 곳곳에 남겨두었으며, 바로 이어서 동족상잔의 비극과 군사정권의 독재정치를 겪으면서 이 땅에는 슬픔이 가득 채워졌다. 이런 역사는, 기억은 사건마다 소환되어 사람들을 괴롭히며, 당장 우리가 겪는 문제와 무관하지도 않다. 당장 2020년의 여러 국면을 떠올려 볼 때도, 2014년 세월호와 2015년 메르스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다시 소환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런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쉬운 설명과 입담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끈 역사 강사는 역사 관련 방송에서 잘못된 정보를 말해 비난을 받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관심 있는 역사는 당의정을 입힌,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거나 힘을 주는 역사다. 역사를 향한 비판적 시선이나 학문적 분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역사는, 기억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한다. 역사는 필요에 맞게 휘두를 수 있는 각목의 역할을 할 뿐,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잘못을 살피는 데 활용되지 않는다. 역사를 직시하는 일은 모두의 것이 아닌 연구자의 것으로 치부된다. 그렇다 보니, 기억은 어딘가 구석에 웅크려 있다가 현실을 엄습하는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된다.

‘보건교사 안은영’ 책 표지. 드라마화와 함께 새로운 표지로 다시 나왔다. 안은영의 무기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감싼 젤리(엑토플라즘)의 귀여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출처: 알라딘

칙칙하지 않게, 경쾌하게 싸우기

안은영이 마주한 학교도 그와 같은 곳이다. 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은 사람들의 슬픔이 잠든 곳에 학교 터를 잡았다. 오랫동안 견뎌 온 학교는 그 위에 거쳐 간 학생들과 시대의 기억을 쌓는다. 그 기억들이 엑토플라즘으로 실체화되어 현실을 습격하고 모두가 속수무책일 때 등장하는 것이 안은영이다. 그는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휘두르며 기억과 싸운다. 그 기억이 정화되고, 바른 곳으로 돌아가도록 만들기 위하여.

그가 상대하는 것은 옛날 자살 명소였던 연못, 괴롭힘으로 죽은 학생, 크레인 사고로 죽은 친구, 잘못된 역사 교육에 항의하는 옛사람들, 심지어 아우슈비츠의 고통까지 넓은 폭을 지닌다. 안은영은 기억이 현실에 나쁜 영향을 미칠 땐 단호히 칼을 휘두르지만, 동시에 이를 보듬고자 한다. 그것은, 그가 퇴마사이자 또 보건교사로서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건교사로서 그는 학교의 보건상 필요를 충족하고 문제를 살피는 역할도 한다. 이런 과거의 기억이 일으키는 문제는 주로 사람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일어나므로,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질병이다. 침에 맞아서 부어오르고, 잠을 설치고, 이질이 퍼진다. 질병은 결코 생물학적으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의과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생의 역사가 의과학에,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과 민족의 삶은 우리의 질병 경험을 바꾸기 때문이다.

여기에 응답해야 할 책무가 안은영에겐 있다. 그는 기억과 질병에 맞서 싸우는 자이며, 이를 바르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다. 엄청난 기운으로 보호받는 이사장의 손자 한문 선생 홍인표에게 힘을 충전 받으며 근근이 버티는 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근근이 버티며, 질병과, 과거와 싸워나가는 우리. 그렇다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과거를 바로잡을 칼과 질병을 사로잡을 총. 그것은 날카롭게 살을 찢고 피를 흘리는 ‘칙칙한 호러물’의 도구가 아니라, ‘마구 달리는 소년 만화’의 밝음을 전달하는 도구여야 한다(185~186쪽). 그때 우리는 “다치지 않고 경쾌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맞잡은 손이다. 비대면을 강요하는 코로나19 앞, 어떻게 손을 내미는 것이 지혜로울지 고민해야 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슈퍼히어로만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20년을 맹습한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끝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코로나19는 여지없이 확산했고, 20~21년도의 겨울은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로 기억될 것이다. 모이지 못하는 겨울, 서로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겨울. 우리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다.

케이 방역도, 백신도 최종 해결책은 아니다. 그것은 감염병을 다루는 방식일 뿐이고, 우리는 이 모두를 조합하여 현실을 상대해야 한다. 상대해야 하는 현실은 감염병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음매가 매끄럽지 못한 제도, 거리두기로 너무도 벌어져 버린 사회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매만져야 한다.

어떻게? 우리가 안은영처럼 퇴마의 능력을 갖출 수는 없지만, 그가 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억을, 역사를 그냥 지나간 것이나 흥밋거리, 심지어는 현재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저금과 같은 것으로 여기기를 그만두고 직접 마주하기. 질병에 걸린 사람을 보살피고, 그 필요에 진심으로 다가가기. 이를 위해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습관적으로 손을 잡”기(40쪽).

그렇다면 코로나19를 상대하기 위해, 그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슈퍼히어로일 필요는 없다. 돌봄을 위해 바쁘게 뛰어가는 간호사의 발소리에서, 조금이라도 회복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의사의 손길에서, 한계 속에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사회의 손길을 전하려 하는 이들에게서 ‘보건교사 안은영’의 모습을 언뜻 엿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모두, 안은영이니까.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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