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카이로스' 남규리 "선은 악을 연기해도, 악은 선을 연기할 수 없죠"

박세연 2021. 1. 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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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규리는 `카이로스`를 통해 받은 호평 중 `대체불가 배우`라는 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제공|남규리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남규리는 MBC '카이로스'가 품고 있던 비밀과 반전의 키였다. 아이를 유괴당한 뒤 실성한 듯 오열하던 모성애 가득한 엄마는, 실은 한평생 사랑이란 걸 모르고 성장한 소시오패스였다.

그토록 선한 얼굴 뒤 감춰진 감정이 이따금 드러나는 순간, 시청자에 전달되는 살벌한 감정은 이같은 반전으로 임팩트를 더했다. 이 역시 강현채에 온전히 스며든 남규리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감정이 명확하다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건 너무 잘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현채는 목적이 있고, 본인만이 가진 매력을 잘 알고 그것들을 무기로 삼는 법을 아는 영민함을 가졌거든요. 심리전에도 굉장히 빠른 캐릭터예요. 도균과 서진의 대화하는 차이만 봐도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요. 특별히 세보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똑바로 쳐다보고 진짜라고 믿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덕분에 남규리의 소시오패스 연기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남규리는 "시청자 반응을 당연히 살핀다. 댓글도 다 읽고, 커뮤니티도 들어가 본다. 대중이 보고 느끼는 지점이 궁금하기 때문"이라며 "읽다보면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새로운 자극도 많이 받는다"고 반색했다.

'남규리가 오열 연기할 때 (악역이라) 울면 안 되는데 같이 울었다'라거나 '소름끼친다' 등의 많은 반응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강현채 역할에 남규리 외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 없다'는, '대체불가' 평가를 꼽았다.

그토록 애정을 쏟은 캐릭터에 대해 남규리는 "강현채는 정신적 트라우마랑 유년시절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과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빨리 드러나지 않고 퍼즐처럼 천천히 드러났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은 행동을 한 게 맞다"면서도 "현채의 숨은 이야기와 성장 배경으로 인한 결핍은 트라우마로 이어졌고, 감정없는 사람으로 살게 된 서사가 있는 캐릭터였다. 아쉬운만큼 더 매력적인 빌런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현채에게 '처음부터 니가 선택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해. 어디서든 진짜 사랑을 받을수 있었으면 좋겠어. 진심을 이길수 있는 건 없어. 네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카이로스' 속 남규리가 빛이 날 수 있었던 건 캐릭터가 지닌 매력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열연도 큰 몫을 했다. 남규리의 남자로 혼신의 열연을 보여준 신성록, 안보현뿐 아니라 이세영, 신구 등 많은 이들이 남규리와의 불꽃 시너지로 '카이로스'를 완성했다.

남규리는 `카이로스`에서 함께한 신성록, 안보현, 이세영 등을 떠올리며 "선한 사람들과 함께 한 소중한 작업"이라 말했다. 제공|남규리
"신성록 선배님과 첫 촬영 때 기억이 나요. 아이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는 감정에 몰입하고 있을 때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어요. 20년 차 선배님의 후배들을 배려해 주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어요. 서로 준비가 잘되어 있는 상태라 맞추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쇼윈도 부부라는 관계에 있어서 너무 친해지지않으려 노력했고, 자연스럽게 호흡이 맞춰진 것 같아요. 역시 베테랑 답게 매씬 능숙하게 해내셔서 촬영이 편했어요."

안보현에 대해서는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분이었다. 늘 열심히 준비해 오세요. 좋은 파트너를 만나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보현과는 매 촬영이 재미있었어요. 분명한 관계 설정이 된 사람이라 자주 촬영하다보니 편하기도 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분이라 열정적인 측면에서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청자를 놀라게 한 안보현과의 격정 키스신 에피소드도 전했다. "대본에는 원래 없는 장면이었어요. 키스신이 없고 대사로 바로 건너 뛰었는데, 감독님께서 둘의 관계에 좀 더 확실함을 주고싶어 (반농담으로) 콘티를 한달반을 만들었다고 하셨어요. (키스신이) 생각보다 진하게 나와서 놀랐죠. 안보현씨가 몸 만드느라 고생했어요. 오랜 시간 굶고, 운동만 했어요. 앵글 바꿀 때도 계속 푸시업을 할 정도로 노력하는 배우예요. 안보현씨와는 친구처럼 편하게 서로를 대하면서 러브라인에 몰입할수 있었어요."

나란히 여주인공으로 활약한 이세영과는 공교롭게도 단 한 장면에서만 만나 아쉬움이 컸다고. 그는 "세영씨는 너무 좋은 동료였고,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 친해지고 싶은 배우였지만, 역할상 한 신 밖에 함께 하는 게 없었고 또 감정적으로 관대해질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작품이 끝나고도 또 보고싶은 동생이자 저에겐 선배님이다"고 말했다.

남규리는 '카이로스' 팀에 대해 "많은 배우들이 한마음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인데 감독님을 비롯해 모두 좋은 배우, 사람들과의 촬영현장이었다"면서 "'카이로스'라는 드라마 자체가 다들 너무나 선한 사람들의 집합체여서 의외성을 보일 수 있게 된 드라마가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은 악을 연기할 순 있어도 악이 선을 연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있는 말을 덧붙였다.

화제를 모았던 바이올린 연주 장면 에피소드도 궁금했다. 촬영 전부터 바이올린 개인 교습을 받으며 전 촬영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해냈기 때문. 이에 대해 남규리는 "감독님께선 도입부와 첫번째 변주되는 곳까지만 흉내 내달라고 하셨다. 대역을 쓰면 된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말라 하셨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떳떳한 연기를 하고 싶었다"며 직접 촬영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바이올리니스트라 강현채라는 인물이 생상스의 ‘론도카푸리치오소’라는 곡과 일치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듣자 마자 매료되었거든요. 그 곡은 바이올린 전공자들도 연주하기 어렵다는 곡이었는데, 강현채의 컬러와 정서와 인생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정확한 곡이었어요. 바이올린 연주로 기교를 뽐낼 수 있는 끝판왕의 곡이었죠. 내가 강현채로 살기 위해 강현채를 위해서도 드라마를 위해서도 클라이막스와 엔딩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촬영 끝나고 선생님과 집에서 밤이든 낮이든 아침이든 틈만 나면 연습했어요."

현장에선 모든 배우, 스태프들의 엄지가 치켜오르며 환호가 가득했다고 귀띔했다. 남규리는 "처음엔 긴장해서 온몸을 떨었는데, 나중에는 뻔뻔하게 연주를 하고 있더라"면서 "4시간 반 동안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완성했다. 감독님,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 성록선배님, 세영씨, 보현씨 스태프들 모든 배우분들께서 엄지손가락을 올려주실 때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카이로스' 속 설정처럼 한 달 전 혹은 한 달 후의 사람과 연락할 수 있다면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지 묻자 남규리는 "한 달 뒤의 나와 통화하고 싶다"며 빙긋 웃었다. 그는 "'코로나19 확진자 많이 줄어들고 있니?' 물어보고 싶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분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지 않나"며 "빨리 소중한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③에서 계속)

psyon@mk.co.kr

사진제공|남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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