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카이로스' 남규리 "소시오패스 연기 위해 나를 믿어야 했다"
남규리(36)가 결국 해냈다. '가수 출신' 꼬리표를 딛고, 연기 잘한다는 호평을 받기까지, 무려 1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남규리는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카이로스'(극본 이수현, 연출 박승우 성치욱)를 통해 그 자신의 스타성을 뛰어넘는 '배우'의 얼굴을 온전히 맞이했다. 가수로 데뷔한 이후 2008년 영화 '고사:피의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적지 않은 작품에서 연기자로 활약하며 오랫동안 영글었던 남규리였지만 10년 넘게 '씨야 출신'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던 그인 만큼 '카이로스'로 쏟아진 찬사는 남다를 터. 이와 같은 행보의 결실은 '2020 MBC 연기대상' 우수 연기상 수상으로까지 이어지며 값진 성과로 남았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지만 어느 해보다 뜨거운 겨울을 맞은 남규리에게, '카이로스'가 남긴 여운은 길었다. 남규리는 인터뷰 중에도 "종영이 실감나지 않는다. 끝이라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섭섭하다"며 "또 하나의 친구라 생각하고 보고 싶을 때 꺼내보려 한다"고 말했다.
'카이로스'는 유괴된 어린 딸을 찾아야 하는 미래의 남자 서진(신성록 분)과 잃어버린 엄마를 구해야 하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 분)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가로질러 고군분투하는 타임 크로싱 스릴러 드라마. 남규리는 극중 소시오패스로 성장할 수밖에 없던 여자 강현채로 분해 혀를 내두르게 하는 무감정을 열연, 호평을 받았다.
작품 선택 배경에 대해 남규리는 "'카이로스'는 선택이 아닌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내 뒤에 테리우스’, ‘붉은 달 푸른 해’, ‘이몽’을 끝내고, 연기에 대한 또 다른 고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깊이에 대해서였죠. 오롯이 나를 또 한번 재정비 하는 공백기가 있었어요. 그 때 삶에 대한 또 다른 나만의 가치관들이 형성됐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싶다’고 생각할 무렵 ‘카이로스’란 작품을 만났습어요."
극중 강현채는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여성 소시오패스 캐릭터라는 강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남규리의 마음에 콕 박혔다.
남규리는 "감독님 미팅 전 시놉시스만 읽었는데, ‘타임크로싱’이란 소재가 심장에 쿵하고 박히는 것 같았다. 제목부터 기회의 신 ‘카이로스’라는 단어가 제 배우 인생에 기회의 신이 있다면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고 솔직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후회없는 삶을 살고싶다고 말하잖아요. 누구나 지금하는 선택들 혹은 그때의 선택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지 않을까? 상상을 하잖아요. 과거의 선택으로 미래가 바뀐다는것이 참 흥미로웠어요. 작가님의 세계관이 느껴졌어요. 또 제가 그동안 해왔던 크고 작은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끌림이 오더군요."
'카이로스' 박승우 PD는 남규리가 지닌 오묘한 색채를 포착, 남규리를 격려하며 궁극에 강현채의 최대치로 이끌어냈다. 남규리는 "감독님 말씀에 신뢰가 갔고, 어렵고 불안해도 도전해보자 싶었다. 어려운 걸 해냈을 때 사람은 성장하는 거니까. 열정을 갖고 도전하게 됐다"며 "나에게는 정말 '기회의 신'이었던 드라마"라 강조했다.
하지만 소시오패스 강현채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했던 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여기에 아이를 잃은 엄마라는 설정 역시 상상만으로 해내야 하는 부분이었기에 '내가 현채라면'을 되뇌이며 준비했단다.
"인물의 감정 변화부터 폭이 참 다양했어요. 일관성이 있는 듯 없는 듯 반전에 반전이 있었죠. 저 스스로 현채라는 캐릭터를 합리화시키고 설득하는게 우선이었어요."
극중 현채는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남규리만큼은 그를 온전히 이해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남규리는 현채의 서사를 만들었다. "현채는 사랑 없이 자란 인물이에요. 그래서 사랑도 모르고, 나쁜 게 나쁜 건줄도 모르는 인물이죠. 현채가 저렇게까지 살게 된 이유가 분명 있지만, 그는 삶을 대하는 방법도 무엇이 맞고, 진심인건지도 모르는 불쌍한 인물이죠."
하지만 연기와 실제 사이를 넘나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현채의 광기에 어느 날은 쾌감을 느끼고, 어느 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 날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현채 역에 너무 빠져있어서 남규리로 돌아오는 게 힘들었어요."
남규리는 "결국 응급실을 세 번이나 다녀왔고,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져서,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다"면서도 "그래도 제겐 너무 소중하고, 값진 작업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어떤 모습도 공들이지 않은 감정선이 없었다" 자부할 정도로 모든 걸 바친 '카이로스'였다. 작품을 통해, 남규리가 배우고 느낀 건 무엇일까.
"과거를 잊으면 안 되요.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있는거죠. 어떤 이들은 '힘든 건 다 잊어버려' '앞으로만 잘 살자'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했던 기억, 잊고싶은 아픔, 고통, 추억, 기억 모두 제 것이고 저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힘들었던 삶도 인생이기에 그래야 좋은 날엔 더 활짝웃고, 감사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강조한 남규리. 실제 자신과는 결이 달라도 많이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일까.
"저에겐 강현채 같은 자존감은 좀 색달랐어요. 저는 저 자신을 많이 채찍질하고 자책하는 편이고, 보이지 않게 긴장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강현채를 연기하며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보단 여성의 주체적인 단단함에 매력을 느꼈어요. 제가 만난 강현채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 말고, 제 안의 세상에서 스토리가 많은 캐릭터예요. 현채의 모든 것에 개연성을 만들었어요. 현채를 연기하며 다채로움을 배운 것 같아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psyon@mk.co.kr
사진제공|남규리, 오에이치스토리, 블러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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