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이 부른 비극..이래도 중대재해법 머뭇댈 건가

선담은 2021. 1.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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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죽음 내몰리는 비정규직]청소 업무지만 고위험 작업인데
당시 현장에 안전관리 직원도 없어
현대차 "2인1조 명시" 책임론 선그어
임원들 온다고 갑작스레 작업 지시
노조 "안전수칙 준수 어려웠을 것"
현대차 "외부 아닌 공장 임원이 점검"
정의당 김종철 대표(왼쪽두번째)와 부대표단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2인1조 작업’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원청의 허가가 필요한 A등급 위험작업에 투입됐다가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현대차 임원들의 방문을 앞두고 갑자기 지시가 내려진 ‘의전용 청소’가 참사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청소 작업 시 가동을 멈춰야 하는 위험설비가 돌아가는 가운데, 숨진 노동자가 평소에 맡지 않았던 일을 하도록 하는 등 회사의 무리한 작업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4일 금속노조 현대차 울산사내하청지회와 현대차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울산1공장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 김아무개(54)씨가 전날 오후 1시27분께 베일러머신(고철 압착설비) 주변 스크랩(철 찌꺼기) 제거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씨 등은 이날 베일러머신 주변의 청소 작업을 지시받았는데, 기계에서 떨어진 스크랩을 압축하는 리드실린더가 수직으로 움직이는 과정에서 몸을 피하지 못해 끼임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이날 현대차와 협력업체에 ‘안전상 조치 미이행’에 따라 사고가 난 베일러머신 2호기 등에 대한 부분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사고 원인에 대해 현대차 쪽은 “김씨가 (원청이) 안전작업 허가를 낸 바닥 이외에 안전펜스로 막힌 설비 안쪽까지 들어가 청소를 하다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 쪽은 “작업자들은 업무 인수인계 때부터 설비 안쪽까지 청소할 것을 회사(협력업체)로부터 지시받았고, 실제 설비 주변 펜스에는 40~50㎝가량의 틈이 있어 지금껏 작업이 이뤄져왔다”고 반박했다. 현장을 조사한 울산지청 쪽은 안전펜스 설치 문제에 대해 “아직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등급 위험인데 ‘2인1조’ 없었다

김씨가 투입된 바닥 스크랩 제거 작업은 ‘단순 청소’가 아니라 원청(현대차)의 허가가 필요한 위험작업이었다. 2020년 12월11일 현대차가 결재한 ‘안전 작업허가서’를 보면, 회사는 해당 작업이 협착·일반 안전사고 등의 위험요인이 있다며 위험등급을 ‘A’로 분류했다.

하지만 사고 당일 베일러머신 3대의 스크랩 청소를 하는 작업에는 숨진 김씨와 조장 ㄱ씨 등 3명만이 투입됐다. 베일러 한대당 한명씩만 투입되다 보니 2인1조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명절연휴에 일부 조원만 출근을 해 설비 점검 담당자인 김씨도 평소 하던 일이 아닌 청소 작업에 투입됐다. 김현제 전 현대차 울산사내하청지회장은 “현대차 작업수칙상 2인1조 작업이 원칙이지만,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그동안에도 혼자 작업을 해왔다”며 “작업 시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원청 안전팀 직원도 현장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쪽은 “2인1조 작업 원칙은 협력업체 업무표준서에 명시된 것”이라고 원청의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현장임원 온다”며 전날 끝낸 작업 재지시?

해당 작업은 사고 전날 이미 2명의 직원이 끝낸 상황이었다. 하지만 협력업체는 사고 발생 50여분 전 갑작스레 재작업을 지시했다. 현대차 중역들이 당일 오후 공장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겨레>가 입수한 협력업체 부장과 조장 ㄱ씨의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이날 낮 12시42분께 협력업체 부장은 “오늘 2시경에 안전(부서) 쪽하고 중역들이 나온다고 한다. 베일러 쪽만 스크랩 떨어진 거랑 지저분한 거 좀 정리해달라고 (현대차에서) 부탁이 왔다”고 작업을 지시했다. 이에 ㄱ씨는 “어제 (스크랩을) 엄청 치워 놓았다”고 설명했지만, 부장은 또 한번 “2시경에 사람들이 온단다. 그 전에 정리 부탁한다”고 독촉했다. 이에 오후 1시께 동료와 작업에 나섰던 김씨는 30여분 뒤 베일러머신에 가슴 쪽이 끼여 쓰러진 채 동료들에게 발견됐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노조 쪽은 “원청 임원이 방문한다는 이유로 1시간 전 급하게 작업지시가 이뤄져 안전수칙을 지키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3일 외부 임원의 울산공장 방문 일정은 없었다. 다만, 공사를 위해 보름 동안 중단됐던 조업이 이튿날(4일) 재개되기 때문에 울산공장 임원들이 현장을 점검하려 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연휴 마지막날 라인 가동됐지만 방치된 안전

김씨의 목숨을 앗아간 베일러머신은 전날 청소 작업 때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사고 당일에는 현대차의 차세대 전기차(프로젝트명 ‘NE’) 생산설비 도입을 위해 가동됐다. 현대차는 다음달 출시 예정인 새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 생산을 위해 지난달 19일부터 사고 당일까지 2주간 설비 개선 공사를 했는데, 4일 조업 재개를 앞두고 이날 시험생산 차원으로 전체 라인을 가동했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작업지시가 이루어졌지만, 김씨의 안전을 챙기는 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지회장은 “협력업체가 안전한 청소 작업을 위해 현대차 공장 내 베일러머신 작동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현대차 스케줄에 따라 생산라인이 돌아가는데, 하청업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청소 작업을 위해) 현대차의 라인을 세울 수 있겠나”라고 호소했다.

선담은 이재연 기자, 울산/신동명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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