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세월의 뭇매 버텨낸 ’61년생 소띠'에게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2021. 1.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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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한 새해에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를 다시 펼쳐보니
삶의 의지 일깨워준 청새치, 상어 떼와 망망대해에서 벌였던 사투…
고통 견뎌 승화시키는 ‘공감’의 힘… “차분하고 강인하게” 새 출발을

평생 갑의 지위에 올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태어나서 60년 세월의 뭇매를 버티면 회갑을 맞는다. 박정희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한강을 건넌 해에 태어난 ‘소띠 한국인’이라면 새해와 더불어 남다른 감회에 젖겠다. 그렇다고 티를 내기도 쑥스럽겠다. 빈말이라도 환갑을 축하하는 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됐기에 본인도 무덤덤한 척 지내는 게 고령화사회의 처세술이다.

우리 집에서도 최대 관심사는 외손자의 돌잔치였다. 원래 이번 주에 친척들이 모일 예정이었지만, 다 아시다시피 집합금지령 때문에, 그 아이의 돌잡이를 지켜보고 폭소를 터뜨리는 즐거움은 다음 달로 연기해야 했다. 당일엔 아이 식구끼리 조촐하게 집에서 떡과 케이크를 놓고 박수를 쳤다고 한다. 돌상을 받은 아이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감상한 뒤, 별 수 없이, 축하 문자를 달랑 보냈다.

/일러스트=이철원

심란하게 시작한 새해지만, 인생과 회심의 일전을 벌이게 된 시간을 맞아 알량한 결의라도 다지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멕시코 만류에서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그 소설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인은 한동안 바다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다가, 모처럼 거대한 청새치를 낚는다. 불행히도 상어 떼가 노인의 청새치를 이리저리 뜯어먹는 바람에 망망대해에서 운명의 사투를 벌인 끝에, 청새치의 잔해만 배에 매단 채 돌아온다. 노인의 삶은 외로움과 빈곤, 무능력, 불운이 엎친 데 겹친 말년의 비참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노인은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명언을 남겼다. 거친 세파에 휘둘리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는 노인의 형상화는 장엄하고 숭고한 남성의 영웅 서사를 대변해왔다. 더구나 헤밍웨이는 흔히 남성미의 작가, ‘마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소설 ‘노인과 바다’는 그런 선입견을 벗어 던지고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노인은 모든 남성의 내면에 깃든 섬세한 여성성을 잘 보여준다. 노인이 구사하는 스페인어에서 바다를 뜻하는 명사 ‘마르(Mar)’는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쓰인다. 젊은 어부들이 바다를 스페인어 남성 명사 ‘엘 마르’라고 부르면서 결투의 상대로 여기는 것과는 달리, 노인은 바다를 여성 명사 ‘라 마르’로 부르면서 생업의 터전을 제공해주는 자연에 감사해 한다. 노인은 바다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먹이를 찾아 헤매는 바닷새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연민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노인이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던진 미끼를 거대한 청새치가 180미터 심해에서 물었을 때, 노인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어두운 바닷속에서 빙빙 도는 청새치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는 물고기를 어르고 달래다가, 조바심을 포기하고 생존 경쟁 속에서 ‘서로 어쩔 수 없는 처지’를 느낀다. 청새치는 포획의 대상이기를 멈추고, 노인이 망망대해에서 만난 동반자이자,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운명의 매개체로 서서히 작동한다. 노인은 청새치와 밤낮을 넘나들면서 승부를 벌이지만 결코 광분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향해 “진정하고 힘을 내게, 이 늙은이야(Be calm and strong, old man)”라고 외칠 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그 문장을 인용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사람들 사이에선 ‘차분하고 강인하게’란 표어처럼 통용되면서 ‘힘에의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 해석되는 듯하다. 개인적으론, 이 소설에서 노인의 차분한 태도가 더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청새치를 낚아 올리지만, 승리의 환희에 발광하지 않는다. 그는 물고기를 향해 형제 의식을 느낀다. 인간과 물고기가 영혼과 육체처럼 분리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그래서 상어 떼가 청새치를 물어뜯자, 독자는 절로 노인에게 감정이입을 한 상태에서, 제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노인과 청새치 사이에 형성된 공감은 어느덧 독자에게 전이돼 더 넓은 공감의 파문을 일으킨다.

소설 ‘노인과 바다’는 인간이 자연에서 먹이를 취할 때 공경심을 지니라고 호소할뿐더러, 개인이 노년에 이르러 삶의 고통을 견디고 승화하는 방법은 자신과 타자(他者)를 잇는 공감 능력의 향상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이순(耳順)을 넘긴 사람일수록 새겨들을 만하다. 소설 속의 노인은 청새치 잔해와 더불어 귀항한 뒤 말없이 잠이 들면서 꿈을 꾼다. 늘 꿨던 사자 꿈을 다시 꾼다. 새해를 맞아 다시 꿈을 꾸기 위하여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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