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2차 가해’ 방조하는 서울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작년 10월 국정감사 때 “동료로서 (피해자가) 조직에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은 진심이었을까.
경찰은 지난달 29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 수사를 종료했다. 5개월 넘게 걸렸지만 새로운 사실관계는 밝혀내지 못했다. 친여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거짓 미투(me-too) 아니냐”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글이 줄을 잇는다.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은 “‘4년 성폭력' 주장의 진실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이 피해자가 비서로 근무하던 때 박 전 시장에게 보낸 편지를 자기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글이 공유되는 과정에서 피해자 실명이 노출됐다. 만화가 박재동씨는 ‘아빠, 4년간 성추행당했다는데 이 편지는 뭐야?’라는 내용의 만평을 경기신문에 실었다.
곳곳에서 ‘2차 가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여성 단체들이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시민 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인권위에 진정했다. 경희대 학생들은 “2차 가해는 없어져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온라인 서명을 받았다. 박 전 시장 캠프에서 일했던 직원 8명도 “이건 아니다”라며 ‘2차 가해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가 소속된 서울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공격받는 동료를 지켜주기는커녕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달 중순 발표한 ‘서울시 성차별·성희롱 근절 특별 대책’이 맹탕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박 전 시장 사건을 계기로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내놓은 대책이다. 당시 대책위는 ‘2차 피해 정의를 확대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 규정도 명확히 하며, 2차 피해 처리 절차를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와 동일하게 운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 내부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문제가 된 분들은 이미 퇴직했거나 외부인이라 조치를 할 방법이 없다. 대신 내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안내 공문을 보냈다”고 했다. 애먼 공무원들만 닦달할 뿐, 실제 눈앞에서 벌어진 피해에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지난달 30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로 사건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측근들에게 ‘피해자와 4월 사건 이전에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피해자 폭로에 신뢰성을 더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건 초기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렀던 시는 아직 입을 닫고 있다. 서울시가 피해자를 ‘우리 품으로 돌아와야 할 동료’가 아니라 여전히 ‘피해 호소인’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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