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07]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우리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이승만 대통령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각인되었다. 해방 직후 우리 사회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분열하고 있을 때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며 하신 말씀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 말은 1754년 벤저민 프랭클린이 자신이 운영하던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라는 신문에 실은 ‘가담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는 제목의 만평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이 말이 완전히 뒤집혔다. 감염자가 연일 1000명 언저리를 맴돌자 정부는 급기야 5인 이상 모임을 전면 금지했다. 새해를 맞아 부모님 댁에 갈 때 부부만 되지 아이를 동반할 수는 없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살 수 있다. 한 달 남짓 남은 설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 단란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평생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속 사진 작가로 일한 마크 모펫(Mark Moffett) 박사는 신간 ‘인간 무리’에서 이렇게 묻는다. 침팬지 열댓 마리가 쾌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낯선 침팬지 한 마리가 여유 만만하게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카페에 앉아 있던 침팬지가 모두 달려들어 그 낯선 침팬지를 물어뜯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판 모르는 사람으로 꽉 찬 서울역 대합실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어선다. 이 세상 모든 사회성 동물 중에서 우리 인간만 거대한 익명 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은 바로 연대(solidarity)였다. 인간은 연대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꼭 몸으로 뭉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마음으로 뭉칠 수 있다. 이 이상 분열하면 안 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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