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사면 논의 유감
[경향신문]
새해 벽두부터 시민들은 엄청 화가 났다. 집권여당 대표가 국민통합을 이유로 감옥에 가 있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한 것이 발단이다. 반발이 거세게 일자 한발 뒤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꺼림칙한 여운이 남는다. 앞으로 여론을 보면서, 그리고 당사자의 반성이 있다면 사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마침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법원 재상고심 판결이 오는 14일로 다가와 있고, 대법원 판결로 형이 확정된다. 아마도 이를 염두에 두면서 사면에 대한 정지 작업을 벌인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이낙연 대표로서는 대권 주자 지지도에서 선두와 격차가 자꾸 벌어지니까 초조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사면 논의가 상대편 야당의 지형을 흔들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으로도 짐작이 된다. 정치공학적으로 유효한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특히 우리와 같은 정치지형에서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역사적인 후과를 남길 것이 뻔하다.
5·18 광주 시민 학살의 책임자들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세력은 감옥에 수감된 지 2년 만에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다. 국민통합을 위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건의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단행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죄로 이들은 대법원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그들을 사면으로 석방한 결과는 무엇인가? 자신들이 저지른 시민 학살에 대해 그들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왜곡하기에 바빴다. 과거 학살권력에 부역한 이들은 특히 전두환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지금의 국민의힘을 비롯해 극우세력의 발호에까지 학살자들의 사면은 반작용을 했다. 처벌이 중단되면 처벌로 이루려던 정의는 왜곡되고 길을 잃게 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집권 시기였던 2008년부터 2017년 봄까지 우리도 끔찍한 정치경험을 해야 했다. 이명박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정치를 활성화했으며, 박근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신 때로 회귀하려 했다. 그동안 어렵게 이루어왔던 민주화의 성과는 무참히 부정되었다. 그런 중에 국민들은 유례없는 속도로 심화되는 불평등의 늪에 빠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끔찍한 고통도 당했다. 권력형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참다못한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한겨울에 촛불을 들었다. 그 결과 박근혜는 탄핵을 당해 감옥에 갔다.
지금 집권여당이 해야 할 일은 쓸데없는 사면 군불 때기가 아니다. 걸핏하면 촛불항쟁을 말하지만 시민들이 촛불항쟁에서 요구했던 개혁과제는 실종되고 있다. 지금의 정권과 여당은 촛불항쟁의 결과로 탄생했음에도 그 겨울의 촛불시민들의 개혁 요구를 외면한 결과 지지층마저 등 돌리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이 여론조사에서는 적폐세력이라고 했던 국민의힘이 오히려 여당을 앞서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집권여당은 리더십 부재, 실력 없음, 잘못된 관점의 삼각파도에 직면하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대어 180석 가까운 범여권 정당이 되었지만, 대통령의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과정이 지지부진한 것은 여당의 실력이 없어서다. 실력이 없으면 진정성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관점 자체가 재벌과 관료들 편으로 기울어 있으니 진정성도 찾기 힘들다. 촛불시민들의 바람과 너무 멀어진 집권여당은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던 그 길을 다시 가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국민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사면권을 섣불리 행사한다면 국민적 멸시를 자초하게 된다.” 과거청산 작업을 선도해온 이재승 건국대 교수의 말이다. 국민적 멸시는 “이게 나라냐”는 시민들의 저항으로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은 정치공학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정치적 원칙을 바로 세울 때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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