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그려도 괜찮아' 사생대회[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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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사생대회 심사를 다녀왔다.
자화상·고양이·야식 이렇게 세 분야의 그림을 모집했는데, 못 그려도 괜찮은 사생대회라니 누가 더 잘 그렸는지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
이를테면 평소에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데 이번 사생대회를 통해 말다툼한 언니와 함께 서로의 얼굴을 그리면서 화해도 하고 실컷 웃었다는 응모작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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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생대회 담당자의 제안에 솔깃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화장실 다녀온다면서 그길로 곧장 집으로 돌아갈까 싶기도 했다. 각 분야 수상작마다 소정의 상품이 걸려 있으니 당락을 결정해야 하고, 그럼 누군가는 심사 기준이 못마땅할 수도 있을 텐데 싶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심사했다. 정성스럽지만 사진을 베낀 그림은 결선 투표에서 제외했다. 프로의 솜씨나 다름없는 그림보다 서툴더라도 개성을 잘 살린 그림과 사연이 재밌는 그림에는 가산점을 줬다. 이번 사생대회가 인생의 첫 관문일 수도 있는 초등학생 응모자에게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차원에서 가산점을 줬다.
심사 과정은 사뭇 진지했다. 이를테면 평소에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데 이번 사생대회를 통해 말다툼한 언니와 함께 서로의 얼굴을 그리면서 화해도 하고 실컷 웃었다는 응모작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자화상이 아닌 관계로 결선 투표에는 오르지 못했다. 사실 그 그림은 볼 때마다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져서 노트북에 따로 저장해뒀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또한 이해충돌 방지 차원에서 심사위원과 교분이 있는 응모자는 없는지 그것도 꼼꼼히 살폈다. 그만큼 심사위원 일동은 수상작을 엄정하게 선별하려고 애를 썼다.
문득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한 끗 차이로 당락이 갈려서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수상 경력이 대학 입시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정의 상품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생필품이었고, 굳이 따지자면 가장 큰 타이틀은 ‘당선의 기쁨’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 당선의 기쁨이라도 응모하신 모든 분께 골고루 나눠드리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서 그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덕분에 모처럼 즐겁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권용득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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